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메인
창덕궁 검서청 난간(60074) 크게보기 창덕궁 검서청 난간(60074) 크게보기
창덕궁 검서청 난간(60074)
문양설명
창덕궁은 조선시대 궁궐 가운데 하나로 태종 5년(1405)에 세워졌다.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이라 불렀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에 타자 광해군 때에 다시 짓고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가장 오랫동안 임금들이 거처하며 정궁 역할을 하였다. 임금과 신하들이 정사를 돌보던 외전과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 휴식공간인 후원으로 나누어진다. 내전의 뒤쪽으로 펼쳐지는 후원은 울창한 숲과 연못, 크고 작은 정자들이 마련되어 자연경관을 살린 점이 뛰어나다. 또한 우리나라 옛 선현들이 정원을 조성한 방법 등을 잘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으로나 건축사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1917년에는 대조전(大造殿)을 비롯한 침전에서 불이 나서 희정당(熙政堂) 등 19동의 건물이 불탔는데, 1920년에 일본은 경복궁을 헐어서 창덕궁의 건물들을 재건하였다.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검서청은 규장각의 부속건물로 금천의 옆에 자리하고 있다. 출판서적의 교정과 서사를 맡았던 실무관원인 검서관을 위한 집무공간이었다. 2005년 이후 앞면 4칸반의 팔작지붕을 갖춘 건물로 복원하였다.
창덕궁 검서청의 난간(欄干)으로 계자다리 없이 평난간으로 구성하였다. 난간의 위와 아래는 살대로 엮었는데 동그라미와 직선을 사용하여 동그라미 안에 '*' 모양이 보인다.
공공누리 제 1유형 마크 - 출처 표시

한국문화정보원이 창작한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예) 본 저작물은 "문화포털" 에서 서비스 되는 전통문양을 활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