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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 면(겉감)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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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주황색 면(겉감)저고리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양팔과 몸통을 감싸며 앞을 여며 입는 형태로 된 한복의 윗옷. 언제부터 저고리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문헌에 처음 보이기는 1420년(세종 2) 원경왕후 천전의(遷?儀)에 나오는 ‘赤古里’ 또는 ‘短赤古里’라는 기록인데‚ 이는 우리말을 취음한 한자표기인지‚ 몽고의 영향인지 그 어원을 단정할 수 없다. 우리 민족의 고유복식은 바지저고리를 기본구조로 하는 북방계통이다. 특히 저고리에서는 북방계 옷의 공통된 특징인 곧은깃(直領)‚ 왼쪽으로 여밈(左父)‚ 좁은소매(窄袖) 등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저고리의 길이는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점차 짧아진다. 지금까지 조사된 저고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530년대와 1560년대의 유물이다. 이것은 이미 띠가 필요 없을 만큼 짧아져 띠 대신 고름이 달려 있고‚ 각 부의 구성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후로 여러 점의 유물이 발굴되고 있어 조선시대 저고리의 변천을 자세히 살필 수 있다. 1600년대의 저고리는 길이가 60∼80㎝이고‚ 1700년대에는 45㎝ 정도‚ 1800년대에는 35㎝ 정도‚ 1900년대에는 22㎝ 정도로 짧아졌다. 여자저고리는 줄곧 단소화(短小化)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경향은 조선시대 중기·후기에 더욱 가속화되어 그 길이가 가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짧아지고‚ 직배래를 이룬 소매는 벗을 때 소매를 뜯어내야 할 정도까지 이르러 요사(?邪)하다는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저고리가 짧아짐에 따라 각 부의 형태도 작아졌고‚ 특히 고름은 가늘고 짧아졌다. 반면‚ 회장은 겨드랑이에서 소매를 따라 나아가는 등 더욱 강조되었다. 이와 같이 저고리가 짧아진 현상은 엄청나게 큰 머리모양‚ 풍성한 치마와 어울리기 위한 것으로‚ 그 당시의 해이하고 화미(華美)하였던 사회풍조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단소화의 경향은 말기에 약간의 반전기미를 보이다가 개화기에 들어 1920년대까지 지속된다. 그 뒤 1930·1940년대에는 저고리의 길이와 각 부가 커지는 장대화(長?化)의 경향이 나타난다. 면은 무명(cotton)이라고도 하며‚ 주로 나무를 써서 본틀과 부속품으로 복잡하게 만들어진 재래식 가정용 베틀에 의하여 무명실로 짠 피륙을 말한다. 나비가 좁으며 옛날부터 한국 평민의 옷감으로 널리 쓰였는데 보통 40자가 한 필이며‚ 네 번 곱쳐 16겹이 되게 필을 짓는다. 50필을 한 동이라고 하며 상목(上木)‚ 수목 등 종류가 많다.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디지털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EncyKorea)" 네이버 백과사전(http://www.naver.com)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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