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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천사둥근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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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아기천사둥근액자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그림도자를 넣어 벽에 걸기 위해 틀을 제작한 액자. <역사> 프랑스 도자의 역사는 서유럽 국가들에서 발전한 도자의 추이와 같이 기득권층과 왕실의 후원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프랑스는 루이 15세의 연인이며 국정행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마담 퐁파두르는 예술품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녀의 권유에 의해 뱅센의 도요를 세브르‚ 그녀의 집 근처로 이전하게 된다. 그 후 적극적인 국왕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1759년에는 왕을 세브르의 주인으로 영접해 `로열 세브르`를 탄생시킨다. 이 때 중국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가 귀국하면서 중국 경덕진의 자기를 만드는 좋은 점토를 가져 오게되고 이를 계기로 이와 유사한 고령토를 오트비엔 지방에서 발견함으로써 백색자기개발에 치중하게 된다. 마이센의 도자기 제조 정보를 가져와 중국식 자기 개발을 위해 공장을 설립한지 30년만인 1769년 경질자기 공장으로 전환한다. 자기가 개발되자 초기의 마이센의 모방을 넘어 로코코풍의 특유의 화려한 도자기를 생산하여 유럽 왕후들에게 선전하게 되는 세브르에 의해 세계 제일의 연질 도기인 파이앙스는 1803년 경쟁력을 상실하기도 한다. 1750년 세브르는 프랑스의 제일가는 예술가 및 도예가의 집합소여서 마이센처럼 중국식 경질자기의 개발은 이뤄지지 못했어도 제품 출하에는 까다로워 조금의 흠이 있는 것들은 버려졌다. 버려진 자기들이 유출되는 통에 루이 15세는 세브르 외에는 도금이나 에나멜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까지 재정했다고 한다 1780-1800년에는 혁명의 물결을 타고 세브르는 국영화가 되었고 신고전주의 풍의 영국 웨지우드 스타일에 카메오(보석이나 모조품)을 곁들인 것이 디자인을 취급한다. 나폴레옹 시대에는 운치있고 무거운 엠파이어 양식의 디자인이 등장하여 베를린‚ 빈‚ 마이센에서도 제작되었다.1793년경 혁명의 물결속에서 세브르는 위기를 맞아 디자인되지 않은 백색의 자기가 대량 수출되어 영국에서 백색자기에 세브르의 디자인이 그려넣어 생산하기도 하였다. 1800년 알렉상드르 브롱냐르에 의해 다시 살아나 대량생산을 하고 신고전주의 스타일로 제조된다. 이 유물은 시내를 왼편에 두고 풀밭에 앉아 있는 천사와 어린 여자의 유희를 테마로 장식되었으며 액자안에 액자를 넣은 격이다. 안쪽에 액자의 그림에 있는 여인과 아기의 액자는 금테처리 하였으며 그 윗부분을 리본처리 하였다. 유리를 별도로 달지 않았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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