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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센꽃그림화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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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마이센꽃그림화병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꽃을 꽂는 병. 화병(花甁). <발달과정/역사> 1710년 독일의 마이센 성에서 유럽 최초로 제작하기 시작한 마이센 도자기는 당시 황실의 지원과 사랑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명품으로 자리 하였다. 마이센은 유럽에서 최초로 자기를 구워낸 요업장이다. 18세기 초 작센 후작의 원조로 자기를 연구해오던 J.F. 뵈트거가 1709년 적갈색의 석질기(石質器) 제작에 성공하고 다시 백자(白瓷) 제조에도 성공하였다. 이에 왕은 1710년에 수도 궁정공방을 드레스덴에 설립‚ 같은해 6월 마이센에 새롭게 궁정공방을 창립하여 이전하게 하였다. 마이센 자기를 세계적인 것으로 만든 사람은 1720년에 총감독으로 초빙된 J.G.헤롤트와 1731년에 조각가 겸 조형작가로서 초빙된 J.J.켄들러인데‚ 전자에 의해 색채 등 회화적 요소가‚ 후자에 의해 형태와 조각적인 발전이 촉진되어 18세기 중반까지 최성기를 이루었다. 마이센 가마는 원래 중국자기의 모방을 목적으로 출발‚ 청(?)나라의 ‘오채자기(五彩瓷器)’를 충실하게 또는 다소 변경하여 모방 ·제작한 것이 많다. 헤롤트는 오채장식을 독특하게 번안하거나 중국인의 모습을 유머 넘친 그림으로 그려넣었다. 로코코 양식이 유행하자 켄들러는 로코코풍의 호화로운 식기 ·꽃병 자기인형 등 장식물도 만들어 유럽 전역에 보급하였다. 19세기 이후 예술적인 생기는 잃어갔으나 뉨펜부르크 등 독일의 타지방의 요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예전 병의 제조법은 금속봉의 끝에 진흙을 굳혀서 병의 모양을 만들어 이것을 중형(中型)으로 하고‚ 용해된 유리 속에 담그거나 유리를 칠해서 만들었다. 예전의 유리는 불투명하여 오늘날의 유리병과 같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투명한 병이 만들어진 것은 BC 3세기 이후의 일이다. 1세기에서 4세기에 걸쳐 로마제국에 의해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시리아 방면으로 제조법이 널리 전해져 병이 만들어졌다. 이 시대에는 제조법도 발달되어 철 파이프의 한쪽 끝에 용해된 유리를 붙여서 형틀 속에 넣고‚ 철 파이프의 다른 쪽 끝에서 입김을 불어넣어 병을 만들었다. 오늘날 사람이 입으로 불어 만드는 제법에 가까운 것이다. 18세기의 산업혁명 이후에는 유리를 용해하는 연료로서 석탄을 사용하거나‚ 원료로는 르블랑법으로 생산된 소다회를 사용하여 유리를 염가로 생산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부분적인 기계화도 이루어졌다. 20세기가 되면서 미국의 M.오웬스가 1903년에 전자동식의 진공흡상제병기(眞空吸上製甁機)를 발명하여 비약적인 대량생산시대로 들어갔다. 맥주병을 숙련공이 입으로 불어 제조하면 1일에 350개가 한도이지만‚ 이 기계로 제조하면 1일에 6만 개를 제조할 수가 있다. 그 후 새로운 전자동 제병기가 계속 발명되어 점점 더 고성능의 것이 나타나고 있다. 주된 기계로서는 린치식 ·로이런트식 등이 있으며‚ 미국 등 선진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IS(Individual Section)기이다. 회수되어 두 번 이상 사용되는 헌 병이 줄고‚ 한 번 쓰고 버리는 원웨이병‚ 즉 새 병의 수요가 증대하고 무게는 점차 가벼워지는 경향이 있다. <참고문헌> 유혹하는 유럽도자기(2000‚ 한길아트)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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