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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부고배(把手付高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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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파수부고배(把手付高杯)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4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삼국시대에 널리 유행한 제기. <유래> 중국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양사오문화(仰韶文化)에서부터 나타난다. 우리 나라에서는 무산 호곡동 유적에서 굽이 달린 그릇이 출현하고 낙랑의 왕광묘(?光墓)에서는 나무로 깎은 두(豆)가 나온다. 그러나 전형적인 굽다리접시는 3세기경 김해지방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경상도지역에서 다양한 변화를 보이면서 발전한다. <시대별 특징> 초기의 굽다리접시는 몸과 다리가 도중에서 한 번 꺾어진 것인데‚ 그릇 몸체의 단이 점점 위로 올라가 나중에는 테처럼 벌어지고‚ 다리도 나팔형 곡선으로 변한다. 처음에는 다리에 구멍이 뚫리지 않고 몸체의 테가 곧게 서면서 뚜껑받이로 변하며‚ 다리에 장방형 투공(透孔)이 생기면 본격적인 신라식의 굽다리접시가 된다. 이 시기의 유적으로는 부산 조도패총을 비롯해 웅천패총‚ 부산서동‚ 김해예안리 유적 등을 들 수 있다. 전기에는 뚜껑이 있는 굽다리접시가 생기고 다리에 창이 없는 굽다리접시는 소멸된다. 뚜껑이 없는 굽다리접시는 납작한 몸체에 좁고 우아한 다리를 가지며 삼각투공이 길어진다. 다리바닥의 둘레가 이중의 굵은 테모양으로 되고 다시 테의 하반부가 안쪽으로 향해 경사지게 잘린다. 또 다리의 투창이 너무 커져서 네 개의 기둥만 남아 있는 듯한 사주식(四柱式) 다리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 뚜껑 있는 굽다리접시는 다리의 바닥이 이중연식(二重緣式)인 것도 있고‚ 2단의 투공도 위아래로 길며 다리 전체가 곡면을 가진 안정된 형태이다. 뚜껑이나 몸체의 표면에 빗으로 그린 집선문(集線文)‚ 문살무늬‚ 톱니무늬가 이 시기의 후엽에 나타나며 중기까지 유행된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서쪽과 동쪽의 형태와 장식이 차이가 나서 가야식과 신라식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유적은 고령 지산동 제44‚ 45호분‚ 부산 오륜대고분‚ 안동 마동고분‚ 경주 제98‚ 109‚ 110호분 등이 있다. 중기에는 전기의 고졸(古拙)한 힘과 날카로움과 견고함이 후퇴하고 바탕흙이 고와지며 영락 등 장식이 화려해진다. 다리는 짧아지고‚ 위가 좁고 아래가 크게 벌어진 원추형인 것이 특징이다. 다리는 중간의 돌대 하나로 상하가 구분되며 하단의 창은 바닥에 접한다. 뚜껑받이는 전기의 뒤를 이어 안으로 기울고 높이는 낮아진다. 뚜껑무늬가 차차 톱니무늬와 원권문(圓圈文) 위주로 변하고 시문면적도 꼭지 주위로 축소된다. 서봉총(瑞鳳塚)‚ 천마총(?馬塚)‚ 금령총(金鈴塚) 등이 이 시기의 유적이다. 후기에는 정삼각형 또는 원추형의 다리와 거기에 뚫린 작은 구멍이 특징이다. 아직 뚜껑있는 굽다리접시가 남아 있으며‚ 뚜껑받이가 낮아진다. 또한 꼭지 주변에 톱니무늬와 반권문대(半圈文帶)가 있기도 하고‚ 다리 중간에는 굵직한 두 줄기의 돌기가 있다. 자료가 많지 않으나 경주 보문동 부부총과 창녕 계성리고분 등이 대표적이다. 통일기에는 뚜껑있는 굽다리접시가 사라지고 뚜껑없는 굽다리접시 뿐인데‚ 짧은 다리에 사발모양의 몸체가 얹히고 귀모양의 손잡이 두 개가 붙어 있다. 다리 구멍은 위아래 2단으로 각각 매우 작은 것이 뚫려 있으며‚ 뚜껑받이에 아직 뚜껑있는 굽다리접시의 전통이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안압지‚ 경주 서악동고분‚ 경주 충효동고분 등에서 출토되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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