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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인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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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조선시대 사인검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8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조선시대의 의장용 보검(寶劍)의 일종 <발달과정/역사> 동양에서는 천(?)에 대한 사상이 강했던 관계로 왕이 하늘의 아들인 천자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하늘의 아들에게 거역하는 자를 징벌한다는 의미 때문에 형벌을 의미하는 부월(斧鉞)을 정벌군 장수에게 줌으로써 장수의 권위를 확인시켜 주었다. 이에 수면문(?面文)이나 성좌(星座) 등이 부월에 표현되었다. 왕으로부터 병권을 상징하는 부월을 받은 장수는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장검을 소지하게 된다. 통상 이 장검은 상징물이었기 때문에 시종이 별도로 들고 지휘자의 뒤를 따랐다. 그리하여 인명을 좌우하는 지휘자의 통솔의 의미와 승리를 상징하는 용맹의 의미로 인해 칠성검이나 인검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권위용의 검 외에도 소유자의 무운을 비는 의미로 싯귀를 새기고 실존하지 않은 동물을 그려 새겨 넣거나 화문(花文)을 그려 넣어 상(祥)스러운 무기로 만들려고 하였다. 인검은 간지의 인(寅 : 호랑이‚ 예로부터 호랑이는 무를 상징)자 들어가는 때에 제작된 칼로 무(武)의 기운이 강하여 부월이 상징하는 바를 구현한다고 생각하였다.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 이 네가지가 모든 적용되는 시기에 제작된 칼을 사인검(四寅劍)‚ 세가지가 겹칠 때 제작된 칼을 삼인검(三寅劍)‚ 두가지가 겹칠 때 제작된 칼을 이인검(二寅劍)이라고 한다. 참고로 『성종실록』 권90‚ 성종 9년 3월 계유조에는 “창원군(昌原君)이 말하기를 신은 본래 고읍지(古邑之)라고 일컫는 여인을 알지도 못하며‚ 전후에도 여인을 살해한 일이 없습니다. 집안에 다만 삼인검(三寅劒)과 삼진검(三辰劒)이 각각 한 자루씩 있을 뿐이고‚ 또 환도(環刀)는 없습니다.”라고 나와있다. 여기서 삼인검과 삼진검은 동일하게 하나의 의장용 군기(軍器)였음이 분명하다. 또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에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가 출정하는 신립을 불러 보검(寶劍)을 하사하고 이일이하 제 군사들이 명을 거역할 때에는 이 검으로 다스리라고 하였다. 이 검 역시 인검과 유사한 의미를 지닌 검일 것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 검은 육군박물관과 고려대박물관 소장의 사인검을 복제한 것으로 “사인검(四寅劒)”이라는 명문과 북두칠성(北斗七星) 문양이 상감(象嵌)되어 있다. <제원> 길이 : 120.4cm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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