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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가면(鳳山假面) 말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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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봉산가면(鳳山假面) 말뚝이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봉산탈춤 제6과장 양반춤에 등장하는 말뚝이의 가면. 1967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된 봉산탈춤은 황해도 일원에 전승되는 해서 탈춤의 하나이며‚ 황해도 봉산군 동선면 길양리에서 전승되다가 1951년경 사리원으로 옮겨 전승되던 탈춤이다. 봉산탈춤의 정확한 기원을 알 수는 없지만‚ 내용이 산대놀이와 비슷해서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형성되었으리라고 추정할 뿐이다. 봉산은 농산물과 수공업 생산물의 교역지이고 소도시로서 탈춤공연의 경제적 여건이 갖추어져 있어서 탈춤공연이 성행하였고‚ 중부 산대놀이 지역과 연결되어 있어서 다른 지방의 탈놀이의 영향을 받아들이면서 많이 개량하여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강령탈춤과 함께 황해도 탈놀이의 최고봉을 이루었다. 그리고 약 200년 전 봉산의 하급관리인 이속(吏屬)인 안초목이 이 놀이를 많이 변화시켜 봉산탈춤을 중흥시켰다. 봉산탈춤은 주로 5월 단오에 연희되었고 원님의 생일이나 관아의 경사 때 특별히 상연되기도 하였으며 중국 사신을 영접할 경우에도 상연하였다. 봉산탈춤은 주로 하층 관리·상인·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탈놀이를 하였고‚ 다른 가면극에 비해 한시 구절의 인용과 풍자적으로 시문을 개작한 것이 많다. 이 탈춤의 주제는 양주별산대놀이와 별 차이가 없는데‚ 벽사(?邪)의 의식무와 굿·파계승에 대한 풍자·양반에 대한 모욕·남녀의 대립과 갈등·서민생활의 실상들을 보여준다. 봉산탈춤의 놀이 내용은 길놀이·고사·무동춤으로 이루어진 전편과 탈놀이로 이루어진 후편으로 구별되며‚ 탈놀이는 모두 7과장으로 이루어져있다. 제1과장은 사상좌춤‚ 제2과장은 팔목중춤‚ 제3과장은 사당(社堂)춤‚ 제4과장은 노장춤(제1경:파계승놀음‚ 제2경:신장수놀음‚ 제3경:취발이놀음)‚ 제5과장은 사자춤‚ 제6과장은 양반춤‚ 제7과장은 미얄춤이다. 봉산탈춤은 벽사의 의미를 가지는 상좌춤으로 시작되어 미얄의 죽음으로 끝나며‚ 마지막으로 풍년을 기원하고 동네가 무사하기를 빌기 위해 제물로 바치는 의미를 담고 있는 탈놀이에 사용되었던 모든 탈들을 태우는 소제(燒祭)의식을 하였다. 말뚝이는 제6과장에 생원·서방님·도련님·취발이와 함께 등장하는데‚ 양반의 무능과 부패를 여지없이 폭로·조롱하는 역할을 한다. 양반 삼형제의 탈은 모두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지만‚ 말뚝이의 탈은 정상적이고 건장한 모습으로 등장함으로써 이 자체만으로 양반들의 무능을 제시한다. 말뚝이는 검은 더거리·흰 바지·검은 패랭이·채찍을 하고‚ 새처 정하는 놀이·시조짓기와 파자놀이·취발이를 잡아오는 과정들을 통해 양반들의 허세를 폭로한다. <참고문헌> 한국의 탈춤(이두현‚ 일지사‚ 1981) ; 해학과 익살의 탈(한국박물관연구회‚ 문예마당‚ 1999) ; 한국의 전통춤(정병호‚ 집문당‚ 1999) ; 한국의 가면극(이두현‚ 서울대‚ 1994) ; 탈(심우성‚ 대원사‚ 1994) ; 중요무형문화재해설(문화재 관리국‚ 1986) ; 한국가면극(전경욱‚ 열화당‚1998) 탈춤의 역사와 원리(조동일‚ 홍성사‚ 1981) <유사·관련 용어> 해서탈춤‚ 산대놀이‚ 단오‚ 생원‚ 도령‚ 도련님‚ 서방님‚ 취발이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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