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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촛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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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도자기 촛대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초를 세우고 불을 켜는 등구(燈具)의 총칭. <일반사항 및 특징> 가동식(可動式)과 고정식이 있다. 서양에서는 밀랍이 일찍부터 이집트인 ·그리스인에 알려져 BC 3세기에는 초가 있었다고 하므로 촛대도 그리스시대 말기에 발명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로마시대에도 수는 적었으나 촛대가 있었음이 확실하며‚ 황제 티투스의 개선문에 부조된 7개의 촛대나 폼페이의 유물 등에서 당시의 촛대를 알 수 있다. 구조는 지주(支柱) 끝에 몇 개의 부리 모양의 가지가 있는 촛대‚ 잔대(盞臺) 중앙에 못이 있는 촛대‚ 초를 그대로 끼울 수 있는 통형(筒形)의 촛대 외에‚ 나부(裸婦)나 장사를 본뜬 장식적인 촛대도 있는데‚ 모두 청동으로 되어 있다. 초를 많이 사용한 것은 중세 촛대를 사용하였다. 르네상스기에는 초를 여러 개 켜는 다등가(太燈架)도 있었고‚ 대리석제 대형 촛대도 있었다. 17∼18세기부터 궁정 등에서는 은으로 만든 촛대를 사용하였으나 도자기 ·청동제의 촛대도 제작되어‚ 실내장식의 역할도 하였다. 중국에는 BC 3세기에 초가 있었고‚ 전국시대 말기의 것으로 인정되는 촛대가 분묘에서 출토되었으며‚ 한대(漢代)의 분묘에서도 출토되었다. 한국에서는 낙랑(樂?)시대에 사용하였음을 입증하는 유물이 고분에서 출토되었는데‚ 청동으로 만든 촛대로 잔대 중앙에 초를 꽂는 못이 있다. 당시 사용된 초는 중국에서 수입한 밀랍인데‚ 귀중품이었으므로 대궐 ·절 등에서 사용되었을 뿐 일반화되지는 못하였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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