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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석선생문집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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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창석선생문집 예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2-0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이준(蒼石 李埈 1560∼1635)의 시문집이다. <개설> 이준의 시문집으로 간년은 미상이며‚ 서문·발문 등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일반적인 형태 및 특징> {권1}:시 163수. {권2}:시200수. {권3}:시 164수. 권{4}:교서 4편(故崇政??判中樞府事兼知經筵春秋館事李滉配享宣宗廟庭敎書‚ 領議政李元翼初度呈辭不允批答‚ 敎鄭忠信書‚ 求言敎書)‚ 게첩 4편(揭鎭江游擊帖‚ 揭吳游擊帖 등)‚ 소 13편(請勿論束伍屬復讐軍討賊疏‚ 乞歸掃墳疏‚ 論戎務疏‚ 請審理寃?疏‚ 論守城及修德之要疏‚ 陳弊疏‚ 請從諫疏 등). 「청물론속오속복수군토적소(請勿論束伍屬復讐軍討賊疏)」는 정유재란 때 소모관으로서 왜병과 대적하는 속오병의 편성문제를 논한 것이며‚ 「논융무소(論戎務疏)」는 후금의 내침이 분명함으로 방비를 강화하고 인심을 거두고 충현을 임용하는 등 자립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논수성습수성덕지유소(論守城及修德之要疏)」는 후금의 내침에 대비‚ 산성을 수축해야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임진왜란 때 도처에서 아군이 쉽사리 궤멸된 것은 산성을 지키지 않고 평야에서 대적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진폐소(陳弊疏)」는 세자보도를 잘하고 군인을 포함 인재를 양성하며 군정을 확립할 것 등을 주장하면서 각종 폐정을 지적한 것이다. {권5}:소 10편(陳時務疏‚ 請?駕有節疏‚ 請選將聚糧以爲自强之本疏‚ 請審理寃?疏‚ 三陟陳弊疏‚ 請行禮讓之敎疏 등). 「진시무소(陳時務疏)」는 보민지책을 강구하면서 외적침입방어 대책을 수립하라고 주장한 것이며 「청선장취량이위자강지본소(請選將聚糧以爲自强之本疏)」는 임진왜란 당시의 패퇴사태를 예로 들면서 량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권6}:소 8편(請勿用?醫之術疏‚ 論邊事疏‚ 論和議選將足食?民疏 등)‚ 차 10편(?堂箚‚ ?堂災異箚‚ 請伸己丑寃枉箚‚ 請勿假主箚‚ 災異箚‚ 請優納諫諍箚등). {권7}:차 18편(請罷營建開經筵箚‚ 請停拜陵箚‚ ?堂雷異冬雷箚‚處置兩司箚‚ 諫院箚‚ 兩司處置箚 등)‚ 啓辭 22편(禮曹回啓‚ 避嫌啓‚ 諫院避嫌啓 등).{권8}:계사 20편(諫院避嫌啓 등)‚ 정문 3편(嶺南屯田措置節目呈楊經理文‚ 呈査官文‚呈上國文)‚ 서(書) 14편(上西厓先生‚ 鄭寒岡 등). 「嶺南屯田措置節目呈楊經理文」은 强兵을 유지하려면 군량미의 비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지적한 후 流亡民을 모집하여屯田을 경작케 하면 그들의 생활을 정착시킬 수 있는 한편 군량미의 저축이 가능하다면서 그 구체적인 실정과 조치를 밝힌 것이다. 「정사관문(呈査官文)」은 인조반정의 당위성을 밝힌 후 인조의 위호를 조속히 정해달라고 명나라에 요청한 것이며 「(정사국문)呈上國文」은 조선의 형편상 記異‚ 禁色戒‚ 書丙申和議後‚ 里約告示文‚ 告諭百?文‚ 白雲?飮中告諭父老子弟文‚ 後溪傅‚ 沙潭傳‚ 郭安陰傳‚ 裵純傳 등)‚ 서(序) 4편(兄弟?難圖序‚ 慶壽詩序 등)‚ 記 10편(屛山尊德祠復享記‚銑潭記‚ 鳳樓亭記 등). 이들은 모두 서후‚ 가훈‚ 고문‚ 권문‚ 유문‚ 통문‚ 전 등 간략한 잡문들이다. {권14}:발 14편(西厓先生文集跋‚ 兩先生書帖跋‚ 漢陰集跋‚ 聽松筆跡跋‚ 芝峯集跋‚ 梧里李相公花草障後跋‚ 聖學要訣後跋‚ 苞山規約條跋 등)‚ 표 1편(賀冊封皇后表)‚ 전 9편(頒勅後百官陳賀箋‚ 賀平逆賊箋 등)‚ 계 2편(賀韓牧伯啓 등)‚ 잠 4편(宴居備賢十箴幷疏 등). {권15}:명 3편(用掘齋銘幷序‚ 唾面不拭銘幷序 등)‚ 상량문 1편(尙州鄕校明倫堂上樑文)‚ 축문 4편(將赴鏡城告先祖祝文 등)‚ 제문 25편(祭退溪先生文‚祭西厓先生文‚ 祭李完平文 등)‚ 碑碣 1편(完平李公神道碑銘). {권16}:비갈 7편(栢潭具公墓碣銘 등)‚ 묘지 5편(?司憲?公墓誌銘 등). {권17∼18}:행장 7편(西厓柳先生行狀‚蘇齋盧先生行狀‚ 愚伏鄭公行狀‚ 芝峯李公行狀 등). 일부의 소와 정문에는 임진왜란 후북방에서 밀려오고 있는 후김세력에 대비‚ 강력한 방어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들어있다. 특히 산성을 수축하고 군량미를 비축하고 장수를 비롯 인재를 양성하고 군대를 정예화하고 보민책 등 내치에 힘써야 한다는 현실적인 주장들이 강조되어 있다.이밖에 인조반정 전후의 정치관계‚ 정치적‚ 군사적 대명관계 등에 관한 문제들도 언급되어 있다. <사회 문화적 의의> 본서는 왜전과 호란 당시의 현황과 방어책 등 국방문제와 시정‚ 대명관계 등을 연구하는 데 일부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명나라가 요구한 군비를 제공할 수 없다고 밝힌 것이다. {권9}:서(書) 43편(與李漢陰‚ 與張旅軒 등). {권10}:서(書) 51편(答李茂伯 등). {권11}:서(書) 74편(答郭靜甫 등) .서는 거의 대부분 교제관계‚ 문집 간행‚ 사무 등에 관한 것이며 「여장방백(與張方伯)」에는 단양군민의 참상과 대책을 요구한 내용이 들어 있다. {권12}:잡저 46편(經筵手記‚ 書筵會講手記‚ 附聖批‚ 附套蒼石弟書‚ 題西厓山城說後贈元帥‚ 題重植壯元栢記後‚ 題養生訣後‚ 風水說答兒問‚ 記趙完壁見聞‚ 異聞錄‚ 書芝峯採薪雜錄後‚ 題鶴峯紀實石左‚ 題一善人物誌後‚ 書력翁稗說韋得儒傳後‚ 記金東岡詩 등). 잡저는 모두 기‚ 제후‚ 행적‚ 자설‚ 서후 등 간략한 잡문들이다. {권13}:잡저 22편(書愚翁執禮帖序‚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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