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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선 지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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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한문선 지초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2-0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한유(韓愈)의 글을 가려 뽑은 책의 필사본(筆寫本) <일반적인 형태 및 특징> 한문선(韓文選)은 편자와 간행년도는 미상이나 교서관서체(校書館書體)로 보아 숙종(肅宗) 때 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권에는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 논불골표(論佛骨表)‚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등 57편이 있다. 한유(韓愈)는 당나라의 문학자이자 사상가로서 자는 퇴지(退之)‚ 시호는 문공(文公)이다. 회주(懷州) 수무현(修武縣:河南省) 출생으로 792년 진사에 등과‚ 지방 절도사의 속관을 거쳐 803년 감찰어사(監察御使)가 되었을 때‚ 수도(首都)의 장관을 탄핵하였다가 도리어 양산현(陽山縣:廣東省) 현령으로 좌천되었다. 이듬해 소환된 후로는 주로 국자감(國子監)에서 근무하였으며‚ 817년 오원제(吳元濟)의 반란 평정에 공을 세워 형부시랑(刑部侍郞)이 되었으나‚ 819년 헌종황제(憲宗皇帝)가 불골(佛骨)을 모신 것을 간하다가 조주(潮州:廣東省) 자사(刺史)로 좌천되었다. 이듬해 헌종 사후에 소환되어 이부시랑(吏部侍郞)까지 올랐다. 문학상의 공적은 첫째‚ 산문의 문체개혁(文體改革)을 들 수 있다. 종래의 대구(對句)를 중심으로 짓는 병문(騈文)에 반대하고 자유로운 형의 고문(古文)을 친구 유종원(柳宗元) 등과 함께 창도하였다. 고문은 송대 이후 중국 산문문체의 표준이 되었으며‚ 그의 문장은 그 모범으로 알려졌다. 둘째‚ 시에 있어 지적인 흥미를 정련(精練)된 표현으로 나타낼 것을 시도‚ 그 결과 때로는 난해하고 산문적이라는 비난도 받지만 제재(題材)의 확장과 더불어 송대의 시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사상분야에서는 유가의 사상을 존중하고 도교 ·불교를 배격하였으며‚ 송대 이후의 도학(道學)의 선구자가 되었다. 작품은 《창려선생집(昌黎先生集)》(40권) 《외집(?集)》(10권) 《유문(遺文)》(1권) 등의 문집에 수록되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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