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어문

김해 수로왕비릉 (金涇 首露??陵)_수로왕비릉전경

추천0 조회수 62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김해 수로왕비릉 (金涇 首露??陵)_수로왕비릉전경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5-29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김해 수로왕비릉에 대한 설명입니다.가야의 시조 수로왕의 왕비무덤이다.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왕비는 성이 허(許)‚ 이름은 황옥(黃?)으로 알려져 있으며‚ 원래 인도 아유타의 공주로 16세에 배를 타고 와서 수로왕의 왕비가 되었다고 한다. 9명의 왕자를 낳았는데‚ 그 중 2명에게 왕비의 성인 허씨 성을 주어 지금도 그 후손이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높이 5m 정도의 원형 봉토무덤으로서‚ 무덤의 밑부분에 특별한 시설은 없다. 무덤 주위에는 얕은 돌담을 4각형으로 둘러 무덤을 보호하고 있으며‚ 앞 쪽에는 긴 돌을 사용하여 축대를 쌓았다. 중앙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가락국수로왕비 보주태후허씨릉(駕?國首露?? 普州?后許氏陵)’이라는 글이 2줄로 새겨져 있다.
무덤에 딸린 부속건물로는 숭보제·외삼문·내삼문·홍살문이 있으며‚ 보통 평지에 있는 무덤과는 다르게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무덤 앞에는 인도에서 가져왔다고 전하는 파사석탁의 석재가 남아 있다. 세종 28년(1446)에 수로왕릉과 함께 보호구역이 넓혀졌으며‚ 임진왜란 때 도굴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비석과 상석 등은 인조 25년(1641)에 다시 정비하면서 설치하였다고 한다.
왕릉에 비해서는 시설이 소박한 편이고 수로왕비릉이라고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으므로 수로왕릉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본다면‚ 내부의 구조는 널무덤(토광묘) 또는 돌덧널무덤(석곽묘)일 가능성이 높다.
※(수로왕비릉 → 김해 수로왕비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cha.go.kr/cha/idx/Index.do?mn=NS_01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