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산수화

추천0 조회수 180 다운로드 수 3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산수화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의제 허백련 작품<산수화> <세부사항> *허백련 (許百鍊 1891∼1977) 한국화가로 호는 의재(毅齋)이며 전라남도 진도(?島) 출생이다. 신학문에 뜻을 품고 1913년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明治?學]에서 법정학을 전공하다 그림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일본 남종화가였던 고무로의 영향을 받아 정통 남종산수화를 지향하였으며‚ 귀국 뒤 22년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전통 산수화를 출품해 입상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27년 이후 광주(光州)에 정착하여 전통 남종화의 맥을 잇는 한편 문하생 지도에 전념하였다. 49년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추천작가·초대작가가 되고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60년 예술원회원이 되었다. 62년 문화훈장 문화포장을 받았다. 주요작품에 《두백농인》‚ 《곡산청하》‚ 《자화상》 등이 있다. *산수화의 발달과정 및 역사 동양에서 산수화란 자연의 표현인 동시에 인간이 자연에 대해 지니고 있는 노장사상에 바탕을 둔 자연관을 토대로 하여 발전된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이러한 밀접한 관계 때문에 중국과 한국에서 일찍부터 산수화가 그려지기 시작하여 10세기경부터는 회화사의 주류를 이루었다. 우리나라에서 회화다운 회화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4세기경 삼국시대부터인데‚ 산수화가 그려진 것은 인물화나 타 분야에 비하여 좀 늦은 약 5세기 초라고 여겨진다. 이 시대 회화에 관한 자료는 고구려 고분벽화가 대부분으로 산수화의 초기 양식도 고분벽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통일신라 때는 전돌에 표현된 공예적 산수문양이 발달하였고 고려시대에는 산수화가 본격적으로 유행하여 중국과의 교섭에 의해 북송과 원나라의 화풍도 수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가 되면 고려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중국에서 받아들인 다양한 화풍을 반영한 산수화들이 발달하게 된다. 조선초기에(1392∼약1550)에 가장 영향을 미친 화풍은 이곽파 화풍과 남송원체 화풍 등이며 대표적인 화가로 안견과 강희안 등이 있다. 조선중기의 산수화는(약1550∼1700)는 초기의 안견 화풍을 계승하면서도 절파 화풍이 크게 유행하였고 또한 명대의 미법산수화풍을 포함한 남종화풍을 수용하기 시작한다. 김제‚ 이징‚ 김명국 등의 화가가 유명하다. 조선 후기의 산수화는(약 1700∼1850) 절파 화풍이 쇠퇴하고 남종화풍이 유행하였으며 남종화풍을 토대로 한국적 산수화풍인 진경산수화가 크게 발달하였다. 대표적 화가로는 정선‚ 강희언‚ 심사정‚ 강세황 등이 있다. 조선말기의 산수화는(약 1850∼1910)남종화가 화단의 압도적 주류를 차지했던 시기로 김정희가 중심이 되어 조희룡‚ 허련 등이 활약했으며‚ 김수철과‚ 장승업도 있다 온화한 그림이다. 당나라 초기 남북2종설(南北二宗說)은 명나라 때 동기창이 《화지(畵旨)》‚ 《화안(畵眼)》 등 그의 문집 속에서 당대(唐代) 선종(禪宗)에 남·북종이 있음을 주목하고‚ 회화에서도 남·북종의 구분을 한 데서 비롯된다. *한국의남종화 한국에서는 정형화된 남종화가 조선 숙종 후반기에 도입되기 시작하여‚ 영조·정조 이후 주도적인 화풍으로 보급되었다.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패문재서화보(佩文齋書畵譜)》 등 명·청 남종화계 화보류(畵譜類)의 영향으로 보급된 남종화는 심사정(沈師正)·강세황(?世晃)·이인상(李麟祥) 등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남종화풍의 진정한 보급과 토착화는 김정희파(金正喜?)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서화본일률(詩書畵本一律)을 추구한 김정희의 작품은 중국 문인화에 비해 손색이 없으며‚ 그의 영향 아래 허유(許維)·조희룡(趙熙龍)·전기(田琦) 등 여러 화가가 배출되었다. 그 밖에도 묵란(墨蘭)의 대가 이하응(李昰應)·민영익(閔泳翊) 등에 의해 진작(振作)된 조선 말의 문인화풍은 근대화단으로 계승되어 오늘날까지 맥을 잇고 있다. <참고문헌> 전라남도·전남대호남문화연구소‚“전남향토문화백과사전”‚ 2002 / 장경희 외 편저‚ "한국미술문화의 이해"‚ 예경‚ 1994 / www.tournamdo.org . 근대에 이르면 조선 말기부터 크게 유행하던 남종 문인화가 계속해서 화단의 주류를 차지하는 상황이 조석진과 안중식 등에 의해 이어졌다. *남종화 (南宗畵) 명(明)나라 때 막시룡(莫是龍)·동기창(董其昌)이 제창한 화가의 계통 및 화풍으로 남화(南畵)라고도 한다. 북종화(北宗畵)에 대응되는 말이다. 북종화가 화원(畵員)이나 직업적인 전문 화가들을 중심으로 경직(硬直)된 선묘를 사용하여 그린 장식적이면서도 공필(工筆)의 그림을 의미하는 데 반하여‚ 남종화는 대체로 인격이 고매하고 학문이 깊은 사대부(士??)가 여기(餘技)로 수묵과 담채(?彩)를 사용하여 그린 간일(簡逸)하고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