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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쓴 ‘가능성에 대한 자소서’

정원희(서울대 졸업식 대표 연설·현 한국투자공사 주식운용실 재직)

2015.12.03 정원희 (한국투자공사 주식운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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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열린 서울대학교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뇌성마비를 극복하고 학업을 마친 학생이 졸업생 대표 연설자로 나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주인공은 정원희 씨로 현재는 한국투자공사 주식운용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정원희 씨가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능성에 대한 믿음과 긍정적 인식이 필요하다는 희망 메시지를 정책브리핑을 통해 전달한다. <편집자 주>

정원희(현 한국투자공사 주식운용실 재직)
정원희(현 한국투자공사 주식운용실 재직)
 “여기까지 어떻게(최종면접에) 왔어요?”

면접장에서 늘 듣는 첫 번째 질문이다. 내 이름은 정원희이다. 나는 서울대 출신이자 뇌성마비 3급 장애인이다. 나는 생후 11개월 만에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휠체어는 어릴 때부터 내 두 다리였다. 그렇다고 좌절하지는 않았다. 나의 무한한 잠재력을 일깨워준 것은 나의 부모님 덕분이었다. 부모님은 언제나 내게 “자라면서 장애가 널 약간 불편하게 할 거야. 하지만 너의 가능성은 늘 무한하단다”고 말씀하셨다. 그 가능성을 믿고 또래들보다 학업에 열중했었다.

그래서 처음엔 사람을 고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허나 고등학교 재학 시절, 내 고향 충남 당진에 있던 한보철강 공장이 폐쇄되면서 고향 사람들이 거리에 나앉게 됐다. 회사 경영진의 분식회계 때문이었다. 내 주변 만큼은 두 번 다시 눈물 흘리는 이가 없도록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것이 목표가 됐다. 그래서 대학은 경영학과로 입학했다. 사실 처음 대학에 입학해서는 너무나 거대한 세상에 부딪쳐 갈피를 못 잡고 방황했었다. 하지만 지난 삶을 돌아보며 나의 가능성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에 다문화 가정 봉사활동, 서울시립아동병원 보조교사, 장애문화예술 단체 ‘짓’을 창립해 사회봉사와 장애인 인식개선에 앞장섰다.

물론 학업에도 소홀이하지 않았다. 23살 때는 비엔나 유니버시티(University of Vienna) 교환학생으로 선발돼 오스트리아 유학길에 올랐다. 그 해 여름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유럽 전역을 배낭하나만 들고서 여행하기도 했다. 그냥 나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시선은 늘 내가 아닌 내 휠체어에 머물렀다. 면접장에서 다른 친구들에겐 업무 적합도에 따른 개인 역량에 대한 질문을 던질 때 나에겐 “일을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이 먼저 날라 왔다. 여태 남들과 똑같이 해왔음에도 장애라는 편견을 가지고 나를 바라본 것이다. 수차례 최종면접에서 고배를 마시는 동안 다행히 내 개인역량을 높이 사준 한 공기업에 지난 4월 취업했다. 

해외 대학 탐방으로 호주에 있었을 때다. 호주 현지에서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너 이 책상에서 일할 수 있어?”라고 물어보는 것은 ‘이 사람은 장애가 있으니까 높은 책상이나 낮은 책상을 주면 충분히 일을 해낼 수 있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즉, “사회인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라는 인식이 사회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장애인이 “나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책상에서 일할 수 있어요”라고 어필해야만 하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신체적 다름’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교육을 받고,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12월 3일은 세계 장애인의 날이다. ‘제2의 정원희’를 꿈꾸는 이들에게도 당부한다. 살아가는데 있어 각자의 장애 상태는 ‘천차만별(千差萬別)’이다. 그렇다고 비관하거나 자신의 한계를 규정짓지 말자. 그 한계 안에서 자신이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가진 가능성에 대해 찾다보면 모두가 ‘제2의 정원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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