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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원중수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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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문수원중수비편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문수원중수비(文殊院重修碑)는 강원도 청평사의 중수 사실을 기록한 고려시대의 비이다. 이 비는 비신의 높이가 1.35m로 현재 비는 파손되어 비편의 일부가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비의 상부에는 진락공중수청평산문수원기(眞樂公重修?平山文殊院記)라는 제액이 있고‚ 그 아래 행서로 쓴 기문이 있다. 이 비는 김부철(金富轍)이 짓고‚ 당대의 명필 탄연(坦然)이 쓴 것이다. 비문에 의하면 이자현(李資?)이 1089년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여 불법을 연구하고 후진을 가르치면서 산 이름을 ‘청평’이라 하고‚ 원명을 ‘문수원’이라 개명하여 중수하였다. 나라에서 진락공이란 시호를 내리고 그의 사적을 비에 새기도록 하였다. 탄연의 행서는 왕희지체로부터 출발하였고‚ 짜임을 정갈하게 하고 필획을 부드럽게 하여 고려 최고의 글씨로 칭송받았다. 탄연은 고려 중기의 승려이자 서예가로 밀양에서 출생하였다. 1085년 명경과에 급제하였고‚ 1088년 경북산(京北山) 안적사(安寂寺)로 출가하였으며‚ 광명사(廣明寺) 정현(鼎賢)의 문하에서 법을 이어받았다. 그 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참선과 교학을 연구하였다. 1106년에 ?師‚ 1109년 중대사‚ 1115년에는 삼중대사(三重?師)가 되었고‚ 1121년 선사‚ 1132년 대선사가 된 뒤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왕의 자문에 응하였고‚ 1146년 왕사가 되었다. 1148년에는 단속사(斷俗寺)로 가서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여 선교(禪敎)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탄연은 뛰어난 서예가로도 인정받았는데‚ 그는 우리나라의 4대 명필 중의 한 사람이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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