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티베트 금강저

추천0 조회수 90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티베트 금강저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불교의식(佛敎儀式)에 사용되는 불교용구(佛敎用具)의 일종(一種). <유래 및 발달과정> 발사라(跋?羅)‚ 벌절라(伐折羅)‚ 발왈라(跋曰羅) 등으로 음역하고‚ 금강지저(金剛智杵)‚ 견혜저(堅慧杵) 등으로도 의역된다. 저(杵)는 인도 고대의 무기 가운데 하나로 제석천이 아수라와 싸울 때 코끼리를 타고 전광(電光:번개)을 무기로 삼아 아수라의 무리를 쳐부순다는 신화에서 유래되었다. 또한 인도의 여러 신과 역사(力士)들이 이 무기로써 적을 항복시킨다고 한다. 뒤에 밀교에서 적을 쳐부수는 의미로 이 무기를 불구(佛具)로 채용하여 여러 존상의 지물(持物)로서‚ 또는 수행의 도구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금강령(金剛鈴)과 한 짝이 되어 의식법구로서 사용된다. 우리나라의 밀교계 종파에서도 진언(眞言)을 외면서 금강저를 휴대하게 되었는데‚ 뜻은 금강과 같은 지혜로 마음속에 깃든 망상을 파멸시키고 지혜 광명을 발현시키려는 데 있다. 밀교의 만다라(曼茶羅)에는 금강부(金剛部)의 여러 존상이 모두 금강저를 지닌 것으로 되어 있다. 『열반경』에는 밀적금강역사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금강저로써 모든 악마를 티끌과 같이 부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에 근거하여 우리나라의 신중탱화(神衆幀怜)에서는 중심이 되는 동진보살(童眞菩薩)이 반드시 금강저를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형태는 손잡이 양쪽이 뾰족한 독고(獸?)만 있는 것과‚ 양끝이 2‚ 3‚ 4‚ 5‚ 9 갈래로 갈라진 2고저‚ 3고저‚ 4고저‚ 5고저‚ 9고저 등이 있다. 최초에는 그 형태가 일종의 무기형으로 뾰족하고 예리하였으나 불구로 사용되면서 끝의 여러 가닥이 모아지는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이들 중 독고가 가장 오래된 형식이라 하며‚ 손잡이 좌우에 불꽃문양 형태를 조각한 경우 이를 보저(寶杵)라고 하고‚ 탑을 조각한 것은 탑저(塔杵)라고도 한다. 이들은 2고‚ 3고의 금강저와 함께 밀교의 단(壇)에 배치된다. 독고와 2고‚ 3고 및 보저와 탑저를 가리켜 5종저 라고 하는데‚ 단을 설치할 때는 탑저를 중앙에‚ 그리고 나머지는 사방에 배치한다. 티베트에서는 금강저를 ‘dorje’ 라고 부르며 의식을 진행하는 신호로 사용된다. 금강령과 함께 금강반(金剛盤) 위에 안치하여 밀교대단(密敎?壇)의 중앙 및 사방에 배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밀교의식에서는 오른손에 금강저(金剛杵)를 왼손에는 금강령을 손에 들고 교차하는 상징적인 무드라를 취한다. 여기에서 금강저는 남성에너지를 상징하며 금강령은 여성에너지를 상징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사고저(?杵)의 대형 금강저로 전체를 한 번에 주조한 후 부분적으로 음각하여 문양을 새겨 놓았다. 중심부 양쪽으로는 이중의 연판문이 음각되어 있으나 세밀하지는 않다. 양끝은 연판문 몸체에서 나온 서수가 입을 벌린 듯 표현되어 있다. 끝에 사고저가 모여진 곳 중심에 얇은 기둥을 만들어 사고저의 끝을 지탱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992. 월간미술 엮음‚『세계미술용어사전』‚ 월간미술‚ 1998. 현장스님‚『티벳의 밀교미술』‚ 대원사 티벳박물관‚ 2005. 김규현‚『티베트 문화산책』‚ 정신세계사‚ 2004.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