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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암관허비매품목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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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안양암관허비매품목판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2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정부의 인증(認證)한 비매품(非賣品)의 공시(公示)를 인쇄 위해 제작한 목판(木板). <유래 및 발달과정> 인쇄를 위해 글자를 판목(板木)에 새길 때 주로 양면에 새기지만‚ 한 면에 새겨진 것도 간혹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글자 또는 그림이 새겨진 판목을 ‘목판(木板)’‚ ‘책판(冊板)’‚ ‘각판(刻板)’ 이라 하며‚ 불서(佛書)인 경우는 ‘경판(經板)’ 이라 일컫기도 한다. 인쇄판은 옛날의 목판‚ 활자판을 비롯하여 근대의 볼록판‚ 평판‚ 오목판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근대식 연활자가 출현하기 이전에는 오로지 목판과 활자판의 인쇄가 인류문화를 발전시키는 원동력 구실을 하였다. 우리나라의 초기 인쇄도 목판인쇄에서 비롯되었다. 그 시기는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 (無垢?光?陀羅尼經)』 목판권자본이 751년(경덕왕 10) 무렵에 간행된 점으로 미루어 그 이전으로 소급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초기 목판인쇄는 본문 내용이 짤막한 『다라니경』 등의 불경을 소형판에 새겨 다량으로 찍어 납탑공양(納塔供養)한 데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9세기 후반기인 신라 말기에 이르러서는 시문(詩文) 등의 일반 학문서적을 판각해 내는 단계로까지 널리 보급되었다. 고려시대로 들어와서는 불교가 국가적 종교로 승격‚ 호국이념과 결부되어 그 진흥책이 더욱 강화되자 불교서적의 판각이 성행하였다. 이와 같이 발전된 판각술은 사찰판(寺刹版) 및 관판(官版)의 간행사업을 계속 촉진시켰으며‚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조선은 고려와는 달리 숭유억불정책을 국시로 삼아 주로 경사(經史:經書와 史記) 중심의 책들이 간행하였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세 점 모두 안양암에서 직접 제작한 목판이다. ‘관허비매품(官許非賣品)’이라고 쓰인 목판은 한문본(漢文本)으로‚ 어느 경판의 일부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1932년〔昭和七年 (소화칠년)〕 관(官)의 허가 아래 안양암에서 이태준 스님이 주관하여 직접 인쇄‚ 발행한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992. 김원룡 감수‚『한국미술문화의 이해』‚ 예경‚ 1994.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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