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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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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일구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해의 움직임에 따라 시간을 측정하던 시계. <유래 및 발달과정> 해시계는 인간이 발명한 가장 원초적인 시계이다. 마당에 세운 기둥은 하루 동안의 시간외에도 1년의 길이를 알게 해준다. 우리나라의 해시계가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삼한시대에 하늘에 제사지내는 곳을 소도라 하고 거기에 솟대를 세웠다는 사실에서 솟대가 원시적인 해시계 구실도 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유물로 남아있는 해시계로는 7세기 이후 신라의 해시계 일부로 보이는 돌 파편이 국립경주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삼국시대의 일관(日官)‚ 일자(日者) 등과 통일신라시대의 누각전(漏刻典)은 해시계를 담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기록으로 해시계가 나타난 것은 15세기초 조선 세종때에 이르러서이다. 1437년까지 세종은 여러 해시계를 만들었는데‚ 앙부일구(仰釜日晷)‚ 현주일구(懸?日晷)‚ 천평일구(?平日晷)‚ 정남일구(定南日晷) 등이 그것이다. 또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와 그것을 조그맣게 만든 소정시의(小定時儀)도 만들었는데 모두 낮에는 해시계로‚ 밤에는 별시계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때 제작된 해시계들은 임진왜란 등을 거치면서 모두 소실되었다. 17‚ 18세기 현종과 숙종 대에 이르러 조선 천문학이 새롭게 발전하면서 세종 때의 앙부일구가 다시 복구되었고‚ 휴대용의 소규모 앙부일구도 다시 제작되었다. 한편 인조 대에는 이와는 다른 새로운 형식의 해시계가 나타났는데‚ 신법지평일구(新法地平日晷)가 그것이다. 이 해시계는 중국인 이천경(李?經)이 서양식 역법인 시헌력법에 따라 제작한 것인데 우리 나라에는 인조 14년에 전해졌다. 그리고 이를 모델로 하여 세종 때의 전통적인 해시계들과는 다른 형태의 해시계들이 다수 제작되었다. 또한 정조 9년에는 서양 천문학의 영향을 받은 또 하나의 평면 해시계가 만들어졌는데‚ 간평일구와 혼개일구가 그것이다. 이외에도 19세기 후반에 강윤과 강건에 의해서 서양 천문학의 영향을 받은 평면 해시계들이 제작되기도 하였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 해시계는 원형의 돌로 만든 것으로 판석 위에 음각으로 시각을 나타내었고 영침(影針)을 꽂아 사용하였을 구멍이 가운데에 나있다. 그 판석 위에는 서울의 위도가 새겨져 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지평일구‚ 해시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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