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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익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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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민영익 간찰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4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이 간찰은 10줄의 행서체로 민영익의 편지글이다. 매화 문양의 판본 바탕이 있는 종이에 쓰여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변방에서 가을을 보내니 서글픈 심정이 더욱 깊습니다. 요사이 가을을 맞아서 대감께서 정사에 무사히 다스리는 것을 알았으니 위로되고 또 축복도 드립니다. 교대할 시기가 멀지 않으니‚ 이때를 당하여 정리대조 하는 일이 상상컨대 심히 노고가 크시겠습니다. 멀리서 염려가 됩니다. 저는 부모님 모시고 여전하니 다행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매일 연이어 공무에 시달리니 말이 아닙니다. 경진 10월 일 민영익 배 " 이다. 민영익(1860철종11-1914)은 자는 우흥이고 호는 윤미‚ 죽미‚ 원정 천심죽대 이며 태준의 아들로 승호에게 입양 되었다. 1877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협관‚ 통리아문 사무가 되었고‚ 임오군란 후 사죄사절로 일본에 다녀 왔으며‚ 권지협 판교섭 통상 사무로 천진에 파견되어 해관사무를 교섭했다. 1883년 전권대신으로 미국에 국서를 전달하며 최초로 서양문물을 시찰했고 귀국 후 혜상공국 총판이 되어 개화당을 탄압했다. 갑신정변 때 부상당해 알렌의 치료로 생명을 건졌다. 친군우영사 협판 내무부사로서 지리국 군무국의 총판을 겸직 하였고‚ 한성부 판윤‚ 병조판서를 지냈다. 정부의 친로 거청정책을 반대하여 원세개에게 이 사실을 밀보하고 곤란하자 홍콩으로 망명했다. 귀국 후 동위사 연무공원 관리사무‚ 판의금부사‚ 선혜청당상 찬정직을 역임했다. 그 후 고종 폐위 음모에 관련 되어 다시 홍콩에 망명 했다가 다시 귀국 했다. 노일 전 후 친일 정권이 수립되자 상해로 망명했고‚ 거기서 죽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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