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연화문수막새

추천0 조회수 39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연화문수막새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수막새는 수키와의 한쪽 끝에 원형의 드림새를 덧붙여 제작한 것으로 목조 건물의 지붕에 이어져 형성된 기왓등 끝에 사용된다. 수막새는 막새와 수키와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막새는 외측에 둥근 주연이 있고 내측에 여러 가지 문양이 장식되어 있는데 그 중심부에는 둥그런 자방(子房)이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제작된 수막새의 주연부는 무늬가 장식되지 않는 소문대(素文帶)가 위주였으나‚ 통일신라 이후에 제작된 수막새의 주연부는 주문(?文)이나 꽃무늬가 새겨져 시기적인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막새는 삼국시대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수막새에 장식된 문양은 구름‚ 연꽃‚ 보상화‚ 인동‚ 연화인동‚ 연화귀면‚ 귀면‚ 중권‚ 와선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연꽃무늬가 주체적이며 형식적인 변화도 가장 풍부하다. 연꽃무늬는 단판‚ 세판‚ 중판‚ 혼판 등 여러 양식으로 변화되고 있어서 그 의장의 다양함을 살필 수 있다. 신라는 삼국기의 신라 곧 고신라시대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이후의 통일신라시대로 구분되고 있다. 그런데 기와의 형식과 그 시문단위도 두 시대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는데‚ 통일신라 시대에 이르러 우리나라의 기와 문화가 화려하게 개화되었다. 신라에 언제부터 기와가 유입되어 사용되었는지 확실치 않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통하여 기원 후 2‚ 3세기경부터는 당시의 궁성 건축에 암·수키와가 제작되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에서 연꽃무늬가 장식된 수막새가 본격적으로 제작되어 궁궐이나 사찰 건축에 사용된 시기는 불교가 공인되고 흥륜사‚ 황룡사 등의 큰 사원이 조영되기 시작한 6세기 전반경부터이다. 신라는 이 무렵에 고구려와 백제의 기와 제작술을 받아들여 형식적으로 서로 다른 두 계통의 복합과정을 거치면서 6세기 후반부터는 연꽃잎의 내부에 능선이 새겨지고 그 끝이 둥글게 마무리되었거나 융기하고 있는 독자적인 막새형을 개발하게 된다. 고신라시대에는 암·수키와와 막새 그리고 사래기와와 치미‚ 귀면기와 등의 마루기와가 제작되었다. 또한 이 밖에도 소형 막새가 약간씩 제작되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수키와는 무단식과 유단식이 함께 제작되고 있는데 고신라시대에는 무단식이 비교적 많은 편이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유단식이 중심이 되고 있다. 그리고 암·수키와의 표면에는 삿무늬‚ 평행선무늬‚ 문살무늬 등이 새겨지고 있는데 통일신라시대와 마찬가지로 평행선무늬가 많이 새겨지고 있다. 그런데 고신라의 기와는 대부분이 회흑색을 띠고 있고 높은 온도로 소성되고 있어 어딘지 모르게 세련되지 않는 투박한 중량감을 느끼게 한다. 본 유물은 반파된 것으로 회색경질계통의 8엽 연화문 수막새이다. 연잎의 중앙에 능선을 두었고‚ 연잎은 양감이 있게 튀어 나와 있으며‚ 잎의 끝쪽은 반전되었다. 사잇잎이 뚜렷하게 올라와 꽃잎 사이를 분할하고 있다. 자방에는 연자가 놓여졌으나 개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문양부와 주연부 사이에는 비교적 넓고 깊은 홈이 있고 주연부에는 무늬가 없이 폭이 좁게 올라온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