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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암경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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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허형암경좌하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작가> 한말 의병장인 이석용(李錫庸‚ 1878-1914)의 자는 경항(敬?)‚ 호는 정재(靜齋)‚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전북 임실에서 출생하였다. 1895년에 스승인 김관술(金觀述)의 딸과 혼인한 이래 향리에서 학문에 전념한 농촌의 지식인이었다. 나라가 어수선하던 19세기말 그는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진주 촉석루‚ 운봉 황산대첩비 등을 찾아다니며 민족의식을 키웠다. 또한 송병선 · 송병순 · 기우만 · 전우 · 정재규 · 곽종석 · 최익현 등 전국의 이름 있는 선비들을 찾아다니며 강학에 참여하거나 시국에 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1907년에 전북 진안의 마이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임실 장수 남원 함양 순창 등 주로 전북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1909년 3월(혹은 1908년 7월)에 의진을 자진 해산한 뒤 훗날을 기약하며 잠적하였다. 그러나 1912년에 은신처의 발각으로 체포되어 2년 뒤 대구감옥에서 순국했다. 유고로는 진중일기인《정재이석용창의일기(靜齋李錫庸倡義日錄)》‚ 창의 사실을 상세하게 서술한《대한의장호남창의록(?韓義將湖南倡義錄)》등이 남아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 서간은 대구감옥에 갇혀있던 1914년 음력 3월‚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 작성한 것이다. 자신이 존경하는 지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하직인사를 고하는 내용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불굴의 투쟁정신이 절절이 배어있다. 의는 중하고 예는 가벼운 현재의 상황이지만 ‘함분인욕(含憤忍辱)’의 치욕을 통탄해하였다. 그가 의병을 일으킨 목적은 일본에 쳐들어가서 대의를 천하에 떨치려는 것이었으나 불행하게도 붙잡혀 실패한 아쉬움을 피력하였다. 이제 남은 사람들이 국가적 치욕을 씻기 위해 노력해 달라는 당부가 담겨 있다. 이석용의 국가관과 시국관이 반영된 편지로서 한말 의병장의 기개와 현실인식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기타참조> "강운 명품선"‚ 순천대박물관‚ 2001. <참고문헌> "강운 명품선"‚ 순천대박물관‚ 2001. "한국인물대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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