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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재집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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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외재집 7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2-0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 외재 이단하(畏齋 李端? 1625∼1689)의 시문집이다. <개설> 서문과 발문이 없어 간행 연대는 알 수 없다. 주요 내용으로는 권1 ·2에 시 235수‚ 권3 ·4에 소차(疏箚) 20편‚ 권5에 소차 4편‚ 응제문(應製文) 23편‚ 서(序) 4편‚ 기(記) 4편‚ 권6에 서(書) 36편‚ 권7에 서(書) ·묘지명 각 10편‚ 권8에 묘지명 6편‚ 비명 2편‚ 묘갈명 1편‚ 묘표 6편‚ 권9에 행장 1편‚ 권11에 언행록(言行錄) 2편‚ 유사(遺事) 1편‚ 제문 6편‚ 잡저 3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차 중 〈논호남사소(論湖南事疏)〉는 호남지방의 군정(軍政)의 문란‚ 공납의 폐단에 대한 개선책을 건의한 것이고‚ 〈논사창사소(論社倉事疏)〉는 그가 예조판서로 있을 적에 지어 올린 사창사목(社倉事目)의 장점을 논한 글이다. 서(序) 중 〈이조낭료계회서(吏曹郎僚?會序)〉는 이조낭관들이 계회(?會)를 만든 일에 대해 쓴 글이다. 행장과 언행록은 이식(李植)에 대한 내용으로 자세하며‚ 잡저의 〈갑을논례변(甲乙論禮辨)〉은 복제(服制)에 관해 자기의 견해를 피력한 것이다. <역사> 이단하의 자는 계주(季周)이며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덕수(德水)이다. 송시열의 문인이다. 1662년(현종 3) 문과에 급제하였다. 1667뎐 부교리로 귀양살이하면서 제신의 사면을 주청하였으며 이듬해에 이조정랑으로 각사 노비의 공납품에 대하여 감액을 주장‚ 실시케 하였고‚ 이어 양전의 실시와 훈련별대의 창설‚ 솔잎으로 기민 구제 등을 청하여 솔잎을 빈민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1675년(숙종 1) 부제학을 거쳐 이조참의로 대행왕의 익상과 행상을 찬하였는데 복제의 항목이 부비된 사건에 관련되어 파직되었다. 1684년 예조판서로 사창절목과 선묘보감을 지어 올렸고 이어 사창설치의 다섯 가지 이익된 점‚ 사죄인에 대해 삼복 등을 주창하였다. 좌의정까지 지냈고 노소론이 일어날 때 송시열을 옹호했다. <일반적인 형태 및 특징> 서발이 없고 앞에 총목과 각 책마다 개별 목록이 있다. {권1‚2}:시(詩)이다. 15세때에 지은 영독송(詠獸松)을 비롯 정구구댁유감(貞舊舊宅有感)‚ 청음금선생상헌만(?陰金先生尙憲挽)‚ 봉기청호이상서일상(?寄靑湖李尙書一相)‚ 곡동춘선생(哭同春先生)‚ 인선왕후만사(仁宣?后挽詞)‚ 이사창사진소후우음(以社倉事陳疏後偶吟) 등 235수. 각체의 시가 섞여 있으나 편차는 지은 연대순으로 되어 있다. {권3‚4}:소차 20편(辭副修撰兼陳北事疏‚ 辭副校理兼陳所懷疏‚ 論湖南事疏‚ 代北儒請鍾城?溪書院賜額疏‚ 傳諭懷德後命後辭職仍陳沿路所聞疏‚ 進宣廟朝寶政?命?不允批答‚ 莊烈? 后徽陵誌‚ 尙州戰亡將士賜祭文 등)‚ 서(序) 4편 (吏曹郞僚계會序‚ 綠水亭詩集後敍 등)‚ 기4편(道巢新居記‚ 跋로 東賢行蹟跋‚ 李忠武公舜臣詩帖跋 등). 「진소회소(陳所懷疏)」는 공주의 묘를 금역에 쓴 것에 대해 항의한 신하들이 죄를 받자 이의 부당함을 항의하여 올린 상소이다. 「선유제주삼읍기로군민서(宣諭濟州三邑耆老軍民書)」는 1671년(현종 12) 제주도에 큰 기근이 있자 그들을 위로하고 종자 등 구호곡을 보내주면서 쓴 유서이다. 「이조랑료계회서(吏曹郞僚계會序)」는 이조랑관들이 계회를 만든일에 대해 쓴 글이다. 최초의 이조랑관들의 계회란 점이 주목을 끄는 내용이다. {권6}:서(書) 36편(上仲氏‚ 上尤齋‚ 與金起之壽與 등) 안부 편지가 대다수이며 우재에게 보낸 것이 13편 있다. 간혹 복제 시사 등에 관한 문답이 있다. {권7}:서(書)와 묘지명. 서에는 여윤숙인지완(與尹叔麟趾完)‚ 답이월보희조여모인별지(答李月甫喜朝與某人別紙)등 10편‚ 묘지명에는 선백씨묘지‚ 공조좌랑안공묘지명병서(工曹佐郞安公墓誌銘幷序)등 10편.「여윤숙인지완(與尹叔麟趾完0」에는 조곡 등 구민책에대해 언급하였고「여모인별지(與某人別紙)」에는 송우암의 이론을 옹호하고 그의 예설의 정당성을 말하고 있다. {권8}:묘시명 6편‚ 비명 2편‚ 묘갈명 1편‚ 묘표 6편. 이중 「횡성현감구후일관민전비명(橫城縣監具侯鎰灌民田碑銘)」은 횡성현감인 구일이 민전에 수리사업을 벌인 데 대한 공적비의 명으로 지방관의 치적을 상탄한 것이다. 그 외의 것은 일반적인 형식문에 지나지 않는 것 들이다. {권9}:행상으로 선부군행상 1편. 택당 이식에 대한 행상으로 이식의 전기적 자료로서 완벽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1책을 차지하는 장문이다. {권10}:행상으로 증좌참찬금공행상(贈左參贊金公行狀) 등 2편‚ 익상으로 우의정이공익상(右議政李公謚狀) 등 3편. {권11}:언행록 2편. 「선부군언행록(先府君言行錄)」은 택당의 언행 중에서 행상에서 중복되지 않는 것 중에서 뽑은 것으로 그의 전기적 자료가 된다. 유사로 조현주찬한유사(趙??纘韓遺事) 1편‚ 제문으로 제죽소금참찬문(祭竹所金參贊文)‚ 광주창강사우봉안제문(廣州滄江祠宇?安祭文) 등 6편‚ 잡저로 갑을론례변부답아서(甲乙論禮辨附答兒書)‚ 책제 등 3편. 「갑을론례변(甲乙論禮辨)」은 복제에 관해 주자가례 등을 인용‚ 자기의 견해를 피력한 것으로 뒤에 이 전말을 간단히 적은 부답아서가 첨부되어 있다. 책제는 북도에서 시행했던 것으로 전제·관방등에 관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은 그가 사회 경제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정책을 펴고 건의했던 이력대로 이런 점이 소차 등에 많이 나타나고 있다. 또 鑑箚‚ 論社倉事疏 등). 모두 연대순으로 소차가 섞여 있다. 「사부수찬겸진북사소(辭副修撰兼陳北事疏)」는 북도의 피폐상을 지적하고‚ 변장을 격려키 위해 임진왜란 때 북도에서 공을 세운 정문부를 포증(褒贈)할 것‚ 토공 수성 군향 등에 관한 폐단의 개선을 건의한 것이다. 「논호남사소(論湖南事疏)」는 이 지방의 군정의 문란‚ 면지공납의 폐단‚ 대동목의 과납‚ 「논사창사소」는 그가 예서판서로 있을 적에 사창사목을 지어 올리고서 그 이의가 일어나자 이에 그 혁신책에 대한 이익된 점을 논해 올린 소이다. {1}사채에 있어서 수식은 적절히 할 것. {2}사창은 이중에 두어 이서가 침탈하는 폐단이 없게 할 것. 그 환상에 있어서 민의 사정을 참작하여 융통성을 둘 것 등이다. {권5}:소차 4편(請政府變通疏 陳所懷 등)‚ 應製文 23편(仁敬??謚冊文‚ 宣諭濟州三邑耆老軍官書‚ 右議노론으로서 예송에 참여하여 송우암의 예설을 지지한 일면도 엿볼 수 있다. <사회문화적의의> 저자는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생으로 이 책은 17세기 예송(禮訟) 등 정치 ·사상 사회사 구에 참고되는 자료이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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