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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 초상 (朴文秀 肖像)_박문수 초상(보물제118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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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박문수 초상 (朴文秀 肖像)_박문수 초상(보물제1189-2호)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5-29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박문수 초상에 대한 설명입니다.흔히 조선시대 御使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靈城君 朴文秀(1691-1756)의 초상화이다. 박문수는 38세인 1728년의 ?武功臣 錄勳 때 ?武功臣像을 하사받았으며‚ 이때 功臣像으로 그려진 全身像과 半身像이 ?安의 후손가에 전해져 1994년 2점 모두 보물 제1189호로 지정되었다.
이 박문수 반신상은 천안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는 1728년의 鶴頂金帶를 착용하고 얼굴도 젊은 ?武功臣像과 달리‚ 1品官이 착용하는 犀帶를 착용하고 얼굴도 노년의 모습이다. 따라서 이 초상화는 1728년의 ?武功臣像보다 후대에 다른 맥락에서 새로 그린 초상화라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이 같은 ?武功臣이었던 趙顯命(1690-1752)이 1751년에 생존한 ?武功臣 14명의 半身像을 그려 勳府畵像帖을 만든 뒤 紀功閣에 갈무리했는데‚ 이때 豊原君 趙顯命 자신과 靈城君 朴文秀‚ 彦城君 金重萬‚ 仁平君 李普赫은 초상화를 새로 그리고‚ 나머지 10명은 집에 소장하고 있던 舊本을 移摹했다고 한 『歸鹿集』 卷18 「勳府畵像帖記」의 기록이다. 왜냐하면 1751년에는 박문수가 61세의 1品官으로서 이 半身像의 圖像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1751년에 이 朴文秀 像과 함께 그려진 彦城君 金重萬의 老年 半身像이 현재 후손가에 전해져 보물 715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규격이 42.5 x 29cm로서 이 신성수 소장품의 老年 半身像 40.2 x 28.2cm와 거의 흡사할 뿐만 아니라‚ 圖像과 畵法‚ 美感도 적지 않은 친연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상의 몇 가지 사실만으로도 이 초상화는 조선시대 肖像畵史와 조선시대 功臣圖像史에서 매우 각별하고 중요한 의미가 있다.
ㅇ 규격(세로x가로) : 121.4 x 49.7 cm(전체)‚ 40.2 x 28.2cm(그림)‚ 41.2 x 28.2cm(발문)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cha.go.kr/cha/idx/Index.do?mn=NS_01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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