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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석도병풍 (竹石圖屛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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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죽석도병풍 (竹石圖屛風)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대나무는 매화·국화·난초와 함께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군자의 지조에 비유된다. 특히 대나무는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기 때문에 군자와 고사(高士)의 지조와 절개로 비유되어 문인사대부의 전인적인 품격을 투영하게 됨에 따라 시와 그림 및 문양 등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해강 김규진이 47세되던 해인 1914년 이른 봄에 그린 10폭 묵죽도(墨竹圖)로 대나무를 사계절의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해강은 대나무에 자기의 심경을 자작시로 지어 이 작품의 각 폭마다 한 수씩 담았는데‚ 그 내용은 당시 쓰러져 가는 조선왕조와 가까이 모셨던 고종황제를 대나무에‚ 어린 영친왕(英親?)을 가녀린 생죽(生竹)에 비유하여 국권이 회복되길 기원하는 심정으로 표현하였다. 김규진(金圭鎭:1868~1933)은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활약한 서화가로 자는 용삼(容三)‚ 호는 해강(涇岡)을 비롯하여 10여 개가 있다. 본관은 남평(南平)‚ 시종원부경(侍從院副卿) 기범(起範)의 아들이다. 8세에 장인 이소남(李小南)에게 글씨를 배우고‚ 18세에는 청나라에 유학하여 서화(書畵)의 명적(名蹟)을 연구‚ 10여년 만에 귀국했다. 글씨는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에 모두 묘경(?境)을 이루었으며‚ 그림은 산수(山水)‚ 화조(花鳥)를 잘 그렸고‚ 특히 난죽(蘭竹)이 절묘했다. 왕세자의 사부(師傅)로 서법(書法)을 가르쳤고‚ 서화연구회를 창설했다.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 서예부(書藝部) 심사위원을 지내며 때때로 경향 각지에서 전람회를 개최 예술 발전에 공헌했다. 벼슬은 시종관(侍從官)을 지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ogung.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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