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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열차분야지도
- 저작물명
- 천상열차분야지도
- 저작(권)자
-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5 건)
- 출처
- 공표년도
- 창작년도
- 2015-01-23
- 분류(장르)
- 사진
UCI 로고
- 요약정보
- <정의> 하늘의 적도를 12차(次)와 이에 대응하는 지역인 12분야(分野)로 나누어 하늘의 형상을 늘어놓은 그림. <유래 및 발달과정> 천문도(?文圖)는 왕조의 권위의 표상으로‚ 고대 왕조는 천체 관측 결과를 규격화하여 성도(星圖)를 작성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가 처음으로 천문도를 석각(石刻)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인본(印本)이 고려를 거쳐 조선까지 계승되었다. 또 고구려의 고분벽화들의 일월성진도(日月星辰圖)에 의해서도 고구려 천문학의 성좌에 대한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즉 3선으로 원들을 이어 나타낸 성좌(星座)와 함께‚ 태양을 동쪽에‚ 달을 서쪽에‚ 청룡?현무?백호?주작을 각기 4방위에 정확하게 그려놓았다는 것은 정확한 전체 관측에 의하여 배치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신라에는 효소왕(孝昭?)1년(692)에 도증(道證)이 당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온 천문도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인의 성좌에 대한 지식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측되나 역시 기록만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의 성좌에 대한 지식 역시 『고려사(高麗史)』에는 오윤부(伍允孚)가 천문도를 작성하였다는 기록만이 있을 뿐이다. 평양성에 있었던 고구려 천문도석본의 인본(印本)은 고려에 계승되었다. 조선왕조를 수립한 태조는 하늘의 뜻에 의하여 세워진 새 왕조의 왕자로서의 권위의 표상으로 새로운 천문도를 갖기를 염원했었다. 그것이 「천상열차분야지도(?象列次分野之圖)」(1395)라는 천문도 석본(石本)을 탄생시켰다. 이 천문도는 고려에 전해진 고구려 천문도를 바탕으로 교정하여 완성한 천문도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이름은 숙종13년(1687)에 다시 새롭게 만든 석각천문도와 1770년(영조46)에 숙종 때의 석각천문도를 목판으로 인쇄하여 만든 천문도에도 붙어 있다. 한편 17세기 말 서양의 천문도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면서 서양식이 가미된 새로운 천문도가 제작되었다. 그중 영조18년(1742)에 제작된 신법천문도(新法?文圖)와 18세기의 혼천전도(渾?全圖)‚ 1807년 황도중국합도(黃道中局合圖) 등이 대표적으로 여러 가지 이름의 관제 천문도가 인쇄‚ 보급되었다. <일반적인 형태와 특징>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적도를 따라 12차(次)와 이에 대응하는 지역인 12분야(分野)에 따라 하늘의 형상을 늘어놓은 그림이란 뜻이다. 북극을 중심으로 동그라미 안에 1464개의 별을 새겨 넣었으며 별자리마다 이름이 쓰여있다. 작은 원 안에는 24절기마다 저녁과 새벽에 남쪽에 위치하는 별자리가 있다. 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오색당채로 그린 민간천문도이다. 동그라미를 검정색으로 굵게 그리고 그 안에는 은하수를 제외한 곳에 푸른색을 칠한 다음‚ 별을 검정‚ 빨강‚ 노랑‚ 흰색으로 칠해 넣었다. 또 적도는 빨간색‚ 황도는 노란색으로 그렸다. 천문도의 내용은 숙종본과 거의 비슷하나 조금씩 차이가 있고 특히 아래의 도설부분은 28수에 대한 설명만 있다. <참고문헌> 『박물관명품도록』(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 2002) 전상운‚ 『韓國科學技術史』(정음사‚ 197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성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천상열차분야지도목각판(정신문화연구원‚ 1991)‚ 『한국의 천문도』(한국천문학회‚ 1995)
- 저작물 파일 유형
- 저작물 속성
- 1 차 저작물
- 공동저작자
- 1유형
- 수집연계 URL
- http://www.emuseum.go.kr
- 분류(장르)
- 사진
- 원문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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