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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락관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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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백락관 간찰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4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이 간찰은 24줄의 초서체로 백낙관의 편지글이다. 그가 제주도 귀양지에서 외사촌에게 보내는 편지로 자기의 근황을 알리고 안부를 묻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지난 달 25일에 붙인 편지는 어느 새 받아보았는 지요. 어언간 해가 새해인데 삼가 존체 평안하시며 자제분도 공부 잘하며 식구들이 모두 평안하시니 또 백가지 복이 냇물처럼 쏟아져 오며 만사가 뜻대로 되어갑니까. 이 곳 내종(고종사촌)은 뜻밖에 굴원의 근심과 기생의 눈물처럼 되어 온갖 산천을 거쳐 험한 파도를 귤나무 속 신선이 되었으니 어찌 하나님의 은총이 깊은 게 아니겠습니까? 다만 연세 많으신 어버이께서 날 염려하심이 깊으셔서 말씀하시는 것도 잊으시고 있으니 충효의 도로써 살펴 본다면 온 지구가 씻겨져 없어지는 듯 합니다. 말이 여기까지 이르므로 차라리 만길의 거센 파도에 몸을 던져 버릴 것이나 도리어 실행하지 못하고 구차하게 살아서 숨쉬고 있으니 무슨 얼굴로 세상에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갓을 찢어 버리고‚ 산골에서 살 계획입니다. 그러고보니 외가댁의 40년간 베풀어 주신 깊은 은덕은 끝내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민망한 바 있습니다. 나머지 아이의 입을 통하여 다하도록 하고 이만 줄입니다. 계미년 1월 5일 내종 백락관 배상" 이다. 백낙관(1846-1883)의 자는 경교(景敎)이고‚ 호는 추강(秋江)이다. 1882년 척왜의 소(疎)를 올렸으나 실패하고 남산에서 봉화를 올리면서 성토하다 투옥했다. 임오군란 시 구출되었으나 난의 실패로 다시 체포 되어 제주도로 귀양 갔다가 사형 되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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