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검색어

※ 최근검색어는 10개까지만 표시 됩니다.

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중치막

추천0 조회수 172 다운로드 수 3 일반문의

문의하기

※ 문의내용은 담당자 검토 후에 답변 드립니다.
 답변 내용은 마이페이지 > 문의하기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필수입력
분류
이미지
저작물명
중치막
필수입력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중치막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5 건)
출처
이용조건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1유형 출처표시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중치막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 사대부가 외출시 착용하던 곧은 깃의 포(袍)이다. 사대부들은 옥색·백색·청색·남색으로 만들어 조복(朝服)이나 겉옷의 받침옷으로 착용하였다. 형태는 곧은깃에 소매 폭이 넓고 길은 길게 하여 앞길은 2매(枚)‚ 뒷길은 1매로 만들어 무를 달지 않고 양겨드랑이는 터놓았다. 이 포의 착용 모습은 풍속화에 다수 나타나며‚ 대원군의 청색 명주로 된 유물이 이화여자대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종 21년(1884) 의복 간소화 때 소매가 넓은 대창의(? 衣)·직령(直領)·도포(道袍)등과 함께 중치막의 착용을 금하고‚ 그 대신 두루마기를 착용하도록 하였다. 본 유물은 1999년 12월 20일 전주(全州) 이씨(李氏) 정간공(靖簡公) 휘(諱) 익정(益炡 : 1699-1782)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에 대한 것이다. 2002년 월드컵 경기장 건설과 함께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면서 이장(移葬)을 하게 된 것이다. 출토당시 관의 내부는 시신이 육탈(肉脫)되어 약간 내려앉은 상태였고 습기가 차 있었으며 악취는 약한 편이었다. 내관(內棺) 안벽에는 얇은 한지(韓紙)가 발려있었고‚ 추운 날씨때문에 유물은 서로 엉킨 채 얼어있는 상태였다. 유물의 상황을 판단하면서 시신의 상부를 덮은 것 중에서 머리 쪽에 있는 보공물(補空物)부터 걷어내었는데‚ 주로 옷·솜·옷감들이었다. 다음으로 수의(壽衣)를 수거하였다. 수의를 입힌 순서를 보면 겉으로부터 위는 심의→중치막→중치막→소창의→적삼‚ 아래는 솜바지→고의‚ 발에는 행전→버선→신을 신고 있었다. 머리는 복건 속에 명목을 덮고 한지로 얼굴을 가렸으며 옥관자(?貫子)를 단 말총(馬尾) 망건(網巾)을 쓰고 상투를 틀었다. 수의는 일단 뼈를 들어낸 후 수거하여 박물관에 돌아와서 정리하였다. 익정의 유물 중 중치막은 수의 2점‚ 보공 3점으로 총 5점인데‚ 모두 두리소매이고 옆이 9.5-13.5cm정도 트여 있어 세자락이 된다. 이 유물은 보공용으로 넣어진 것이며‚ 삼팔주로 만든 홑 중치막이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