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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숙동중서명언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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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김창숙동중서명언대련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김청숙의 대련 김창숙은 한말의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문좌(文佐)‚ 호는 심산(心山)·벽옹(펼翁)이다. 어려서 유학을 배웠고 문장에 능하였다. 1905년(광무9)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서울로 올라가 이완용(李完用)을 비롯한 을사오적(乙巳五賊)을 성토하는 상소(上疏)를 올렸으며‚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9년(융희3) 성명학교(星明學校)를 창립‚ 육영사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직후 더욱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전국 유림대표들이 서명한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유림단진정서(儒林團陳?書)를 휴대하고 상하이로 건너가‚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우송하였다. 그 해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이 되고‚ 이듬해 귀국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다가 제1차 유림단사건으로 체포되었다. 출옥 후 다시 중국으로 가서 1921년 신채호(申采?) 등과 독립운동지인 <천고(?鼓)>의 발행에 이어‚ 박은식(朴殷植) 등과 <사민일보(四民日報)>를 발간‚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한편‚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조직‚ 군사선전위원장으로 활약하며 쑨원(孫文)과 교섭‚ 독립운동기금을 원조 받았다. 1925년 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에 당선되었다. 1927년 상하이 주재 일본영사관원에게 붙잡혀 본국으로 압송되어 징역 14년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서 복역 중‚ 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 의원을 역임하였으며‚ 유도회(儒道會)를 조직하고 회장 및 성균관장을 역임하였고 1946년 이양구로부터 재단법인 학린회의 토지 재산을 기부받아 명륜전문학원을 병합하여 성균관대학을 설립하였다. 1953년 성균관대학의 종합대학 승격과 함께 초대 총장으로 취임하였다. 저서로는 김황(金榥)이 편집한 <심산유고(心山遺槁)>가 전한다. 심산의 이 행서체의 대련은 중국 한(漢)나라 때 유학자인 동중언의 글을 옮겨 쓴 것으로 "그 바른 의리를 바르게 실천할 뿐 그것이 이롭기를 꾀하지 아니하며 그 바른 도리를 바르게 밝힐 뿐 그것의 효과를 계산하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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