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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과삼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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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부과삼형제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부과삼형제 활동시기 : 삼국시대 상세설명 사량부 사람인 내마 취복(聚福)에 세 아들이 있었다. 큰아들은 부과(?果)이고 둘째는 취도(驟徒)‚ 셋째는 박실(박實)이었다. 삼형제 가운데서 취도는 뜻하는바 있어서 일찍 머리를 깎고 불문에 들어 법명을 도옥(道?)이라고 하고 실제사(實際寺)에서 수도에 전념하고 있었다. 이 때는 삼국이 서로 다투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되풀이되던 무열왕 초기였다. 불도에 전념해야하는 출가한 모이였지마는 도옥의 마음은 흔들리기만 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한 이 때 절에서 수도에만 전념하는 것이 과연 옳은 길이겠느냐? 이러한 의문 속에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다. 무열왕이 助川(조천)에 침입한 백제군을 맞아 격전이 전개되었으나 승부를 결단 짓지 못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도옥은 함께 수도하는 벗들에게 솔직한 마음의 흔들림을 털어놓는다. "불문에 몸을 바친 나니 첫째로는 수양에 마음을 다하여 부처님의 본성에 도달하여 불도를 터득하고‚ 둘째로는 터득한 불도를 활용하여 중생을 제도해야 하는데 나같은 것은 머리를 깎고 법의를 걸쳐 모양만 중일 뿐‚ 한가지도 이룬 것이 없으니 참으로 한심할 따름이지.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렴. 나라가 편안하지 못하고 적국은 날로 침범을 거듭하니 이런 형편에서 어찌 불도를 이룰 수 있겠는가? 차라리 군문에 들어가 목숨을 바쳐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나아갈 길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 길로 곧 군졸에 지원하겠다." 도옥은 지금까지 망설이던 마음을 정했다. 법의를 벗어 던지고는 군복으로 갈아입고 전선에서 앞장서서 빨리 달리는 무리가 되겠다는 뜻에서 이름을 취도(驟徒)라고 고쳤다. 취도는 곧 병부(兵部)로 찾아가서 三千幢(삼천당)에 소속시켜 줄 것을 청했다. 이제‚ 취도의 마음은 안정되었다.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바라던 바와 같이되어 용약 전선으로 나아갔다. 보다 큰 것을 이루기 위해 작은 내 하나의 목숨을 바치는 것이 가장 보람된 일이라고 깨달은 취도는 창칼을 높이 들고 적진으로 돌격하여 싸우고 또 싸우다가 전선의 이슬로 사라졌다. 취도의 마음과 장렬한 전사에 가장 깊은 감명을 받은 사람은 그 형이 되는 부과였다. 그는 아우의 마음과 죽음을 헛되게 하고싶지 않았기에 아우의 뜻을 잇기 위해서 그도 군문으로 들어갔다.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합하는 통일 성전에 종군하여 빛나는 공훈을 세워 드디어 당주(幢主)가 된 부과였다. 부과는 살아남아서 당주까지 출세한 것이 아우 취도에 대해서 죄라도 지은 것처럼 부끄러웠다. 부과는 괴롭기만 했으나 그 괴로움을 털어 버릴 수 있는 날이 왔다. 문무광 11년 (A. D. 671) 백제를 다시 일으키겠다고 백제의 유민들이 일어선 것이다. 문무왕은 군사를 일으켜 웅진(熊?) 남쪽에서 백제의 독립군과 싸워 크게 이겨 모처럼 달성시킨 통일의 대업을 깨뜨릴려는 야망을 분쇄시켰던 것이다. 이 전쟁에 부과는 당주로서 종군하여 큰 전과를 거두고 전사했는데 공로는 논할 때 제일로 칭송되었던 것이다. 부과와 취도가 이와 같이 순국하고 이제 삼형제중에 박실 홀로 남게되었다. 박실은 두 형님의 충성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자기도 형들처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었다. 형들처럼 충성스럽고 용감한 국민들에 의해서 삼국은 하나가 되고 이제는 태평세월이 계속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고구려의 유민들이 보덕성(報德城)에서 반란을 일으켜 또 전쟁이 일어났다. 신문왕 4년(A. D. 684)에 일어난 소위 대문의 난(또는 실복의 난)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신문왕은 곧 대대적인 토벌군을 편성하여 보덕성으로 보냈다. 이 때 박실은 귀당제감(貴幢弟監)이 되어 출정하게 되어 싸움의 마당으로 떠나기에 앞서서 그 아내에게 엄숙하게 타일렀다. "나의 두 형님들은 이미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 영원히 썩지않는 이름을 청사에 남겨놓은 것은 그대도 잘 알고 있는바와 같소. 내 비록 불초하나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여 구차하게 생명을 연장시켜 형님들의 이름을 더럽힐 수 있겠소. 오늘의 이 이별은 그대와의 영원한 이별이니 너무 서러워 말고 부디 잘 살기를 바랄 뿐이오." 박실은 울면서 소매를 잡는 아내와 이별하고 전선으로 달렸다. 보덕성의 전투가 시작되자 박실은 선봉에 서서 적진으로 돌진하여 적 수십명을 베고는 그도 또한 전사했다. 신문왕은 부과 삼형제의 용감한 죽음을 알고 눈물을 흘리면서 감탄하며 삼형제의 공을 찬양하고 모두 사찬 벼슬을 주도록 했다. 3형제가 서로 명예를 전해가면서 차례로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이런 예도 화랑에게만 볼 수 있는 것이다. 신라정신의 위대했음을 또 한번 느껴 본다. . 나라가 편안하지 못하고 적국은 날로 침범을 거듭하니 이런 형편에서 어찌 불도를 이룰 수 있겠는가? 차라리 군문에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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