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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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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어문
저작물명
안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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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안축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5 건)
출처
이용조건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1유형 출처표시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안축 호 : 당지/근제 활동시기 : 고려시대 상세설명 안축은 서기 1287년(충렬왕13)에 흥주부 부내동(지금의 영풍군 순흥면 읍내리 사현정)에서 밀직공 안석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글배우기를 좋아하여 일찍 문과에 급제하여 전주사록이 되고‚ 이어 사헌규정을 지냈다가 서기 1324년(충숙왕11)중국 원(元)나라 과거에 급제하여‚ 요양로에 있는 개주판관으로 임명하였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성균학정을 거쳐 우사의대부에 이르렀다. 충혜왕 재위시에는 강원도 안렴사로 있다가‚ 충숙왕이 복위 하였을때에는 충혜왕의 근신들을 모두 배척하자 안축도 이에 휩쓸려 유배 되었으나. 왕은 그를 다시 기용하여 감찰대부에 오르게 하였다. 강원도 안렴사로 있을 때 관동와집을 썼고‚ 강원도 순무사로 있다가 돌아오는 길에 관동별곡을 지었는데 경기체가의 형식으로 전편 8편이다. 그리고 검교평리로서 상주목사로 있을 때 나라의 충신일 뿐만 아니라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 하였는데 모친이 고향 흥주(지금의 순흥)에 계셨으나 자주 내왕하여 안후를 물어 효를 다 하였다고 한다. 서기 1344년 충목왕 즉위시 지밀직사사에 이어 첨의찬성사 되었고‚ 뒤에 감춘추관사가 되어 민지가 지은 편년강목을 이제현등과 함께 개편했으며‚ 충렬·충선·충숙 3조의 왕조 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선생이 지은 죽계별곡은 고려 충숙왕때 지은 경기체가로서 고향의 순흥땅 죽계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것으로서 5연으로 되었으며 관동별곡과 함께 국문학적으로 문학성이 있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죽계별곡의 원문이 신제 주세붕이 엮은 죽계지에 실려 있으며 지금 순흥 면사무소 안에 세워져 있는 봉서루 2층에는 이 죽계별곡의 현판이 봉서루 중건기 와 함께 유규한 세월을 지닌채 누구의 글씨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란히 걸려있다. 안축은 관이 찬성사에 이르렀고‚ 흥령군을 봉하였으며‚ 시호는 문정공이라고 하는데 이 고장을 빛낸 훌륭한 인물로 추앙받고 있으며 많은 저술을 근제집으로 엮어 놓았다.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하였다. 시호는 문정공‚ 소수서원에 제향했다. 저서로는 근재집이 있는데‚ 거기에 관동별곡과 죽계별곡이란 경기체가가 전해져오고 있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고려 때의 경기체가는 한림별곡과 관동별곡‚ 죽계별곡 3편이 고작인데 그 중에서 고려 고종 때 여러 선비들이 함께 지었다는 한림별곡을 제외하면 관동별곡과 죽계별곡뿐인데 이 두 편이 안축의 작품이다. 실로 이 고장은 이 나라 주자학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경기체가의 발원지였음이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관동별곡은 작자가 충숙왕 때 강원도의 순찰사로 있다가 돌아오는 길에 강원도의 풍물과 경관 그리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읊은 것이며‚ 죽계별곡은 소백산에서 발원하여 백운동을 비껴 흐르는 죽계천과 순흥향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여러 가지 경관과 운치를 읊은 것이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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