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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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장미무늬 뉴동 옷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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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장미무늬 뉴동 옷감

저작자 미상 - 저작물 2267372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뉴동은 뉴똥 혹은 유동이라고도 불리는데‚ 빛깔이 곱고 보드라우며 잘 구겨지지 않는 명주실로 짠 옷감이다. 예전에는 명절마다 시절에 맞는 옷감으로 예쁜 옷을 지어 입히는 것이 우리 어머니들의 자부심이었던 것 같다. 특히 설날에는 진분홍 뉴똥치마에 샛노란 호박단 저고리가 대표적인 패션이었다. 다듬이 소리는 질감에 따라 다르다. 명주나 양단은 카랑카랑한데 낭랑한 소리가 나고‚ 뉴동은 포근포근한데‚ 자근자근 두들기면 구름무늬가 살아난다. 명주나 비단은 둥글고 긴 박달나무 홍두깨에 감아 올린다. 딱딱‚ 빙글빙글 돌아가며 고루고루 두들겨져 구김살이 펴진다. 비단(緋緞 ‚ silk)은 여러 가지 색상의 견사로 짠 무늬있는 고귀하고 화려한 견직물(絹織物)을 말한다. 비단 직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중국의 주(周)나라 무왕(武?)은 왕실에서 짠 비단을 어의(御衣)로 사용하였으며‚ 개선장군에게 금포(錦袍)를 하사하였다고 전한다. 한대(漢代)에는 양읍(邑)이 주산지가되어 이때부터 한금(漢錦)이 실크로드를 따라 서역(西域)에 본격적으로 전해지기 시작하였는데‚ 비단은 금(金)값에 맞먹는다고 해서 글자도 금(錦)으로 쓰게 되었다고 전한다. 한금은 지금으로 말하면 평직(平織)의 변화조직인 경묘직(經畝織)의 일종인데‚ 여러 가지 색상으로 염색된 섬세하고 치밀한 경사(經絲)의 매올마다 굵은 위사(緯絲)의 여러 올을 한꺼번에 교차시킴으로써 경사만이 천의 표면에 두둑처럼 나타나는 다채로운 무늬 효과를 내는 경금(經錦)이다. 경금은 경사의 조작이 까다롭고 작은 무늬의 제직이 곤란하였기 때문에 당대(唐代) 초에 들어와서는 위사만이 무늬효과를 내는 위묘직‚ 즉 위금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종래의 경금 대신 빠른 속도로 보급되었다. 정교한 무늬의 위금은 그 후 한국을 거쳐 일본에 전파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비단의 생산과 제직기술을 관장하는 직금방(織錦房)·별금방(別錦房) 등의 관청이 있어 금직은 매우 번성하였다. 소지왕 때 방인(邦人)도 금수를 입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금의 역사는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 이후에는 금직기술이 발전하지 못하여 비싼 값으로 중국으로부터 수입하였는데 1945년 광복 이후 최근에 이르러서야 겨우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었다. 비단의 조직은 점차 간단해져서 능직(綾織)이나 수자직(子織) 바탕에 금사(金絲) 또는 색사(色絲)의 위사가 회화적인 무늬를 이룬 것이 증가되었다. 고급 옷감의 용도 이외에 주머니·법복·무대의상·장식품 등 특수 용도로도 쓰인다.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디지털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EncyKorea)" 네이버 지식검색(http://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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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 상세정보

저작물 속성
1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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