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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지 묵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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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유한지 묵첩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서예가인 유한지의 묵첩. <발달과정/역사> 유한지(兪漢芝 1760(영조 36∼?)는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서예가로 본관은 기계(杞溪)이고‚ 자는 덕휘(德輝)‚ 호는 기원(綺園)이다. 한준(漢雋)의 사촌동생으로 영춘현감(永春縣監)을 지냈다. 전서와 예서를 잘 써서 일대에 이름이 높았다. 신위(申緯)는 《경수당집(警修堂集)》에서 “청풍군수 윤제홍(尹濟弘)의 산수화와 영춘현감 유한지의 전서·예서가 한때 뛰어났다.”고 하였고‚ 김정희(金正喜)는 《완당집(阮堂集)》에서 “조윤형(曺允亨)과 유한지는 예서에 조예가 깊었으나 문자기(文字氣)가 적다.”라고 평하였다. 《근역서휘(槿域書彙)》·《근묵(槿墨)》 등에 전하는 그의 진적을 보면‚ 당시 중국과의 빈번한 내왕에 따라 전래된 비첩(碑帖)을 본격적으로 익혀 고법(古法)을 충실히 따랐음을 살필 수 있다. 금석으로 영천의 〈은해사영파대사비(銀涇寺影波?師碑)〉‚ 산청의 〈문익점신도비(文益漸神道碑)〉등의 전액(篆額)을 썼다. 첩(帖)은 책처럼 꾸며 한 장씩 낱장으로 넘겨서 보는 것으로 책항(冊頁) 또는 두방(斗方)이라고도 하는데‚ 주로 작은 크기의 작품들을 표구할 때 사용된다. 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위아래로 펼쳐볼 수 있는 추섭장(推摺裝)‚ 좌우로 펼쳐볼 수 있는 호접장(胡蝶裝)‚ 경전처럼 접는 경섭장(經摺裝)이 그것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기원(綺園) 유한지(兪漢芝)의 묵첩(墨帖)으로 전반부(前半部)에는 회화(繪畵)가 그려지고 후반부(後半部)에는 글씨가 쓰인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초서(草書)의 8폭 서첩(書帖)과 2폭의 화첩(畵帖)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화첩(畵帖)에 호(號)와 낙관(落款)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참고문헌> 명지대학교박물관‚《박물관도록》‚ 1996.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05.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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