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백자향로

추천0 조회수 50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백자향로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향을 사르는 데 사용하는 분향기구(焚香器具). 백자는 조선시대 도자기를 대표하는 것으로 조선조 500년의 전기간에 걸쳐 제작되었고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백자의 종류는 순백자(純白磁)‚ 백자철화(白磁鐵畵)‚ 백자진사채(白磁辰砂彩)‚ 청화백자(靑華白磁) 등 많은 종류가 있다. 조선시대 도요지(陶窯址)는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里誌)에 자기소 139개‚ 도기소 185개의 기록을 보면 고려시대와는 달리 수백을 헤아리는 각종 도자기 가마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경국대전(經國?典) 이전(吏典) 경관직(京官職)에 의하면 왕실용 도자기 제작과 경기도 광주의 중앙관요(中?官窯)를 비롯한 지방관요(地方官窯)에서 도자기 굽는 일을 총괄하는 사옹원(司饔院)을 두었다. 이와 같은 사옹원은 건국 원년에는 사선서(司膳署)‚ 그 후에는 사옹방(司饔房)으로 개칭되었다가 세조(世祖) 13년(1467)에 사옹원(司饔院)으로 되었다. 국초의 이와 같은 정비정검은 처음부터 도자기 제주의 지반을 확실히 하고 공고히 다진 것이라고 하겠다. 백자는 조선조 전기를 통하여 꾸준히 번조되었는데 특히 경기도 광주 일원에 중앙관요를 두고 제작하였으며 조선조 중·후기의 것을 소위 분원자기(分院磁器)라고 하여 귀히 여겼다. 이와 같은 분원은 1883년 관영(官營)이 폐지되고 민영화(民營化)로 될 때까지 조선조 도자의 중요한 도요지였다.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디지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 숙명여자대학교 박물관‚ 高麗·朝鮮朝 陶磁(숙명여자대학교 박물관 특별전도록 4)‚ 숙명여자대학교 출판부‚ 1991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