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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전서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이한복(李漢福;1897-1940)은 한국화가로 어려서 조석진과 안중식에게 전통화법을 배운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동경미술학교 일본화과를 졸업하였다. 고서화 감식안목이 높았던 그는 일찍부터 글씨도 즐겨 오창석체의 전서를 잘 썼고‚ 조선미술전람회에 글씨와 그림을 같이 출품하기도 하였다. 서예는 점과 선·획(劃)의 태세(?細)·장단(長短)‚ 필압(筆壓)의 강약(强弱)·경중(輕重)‚ 운필의 지속(遲速)과 먹의 농담(濃?)‚ 문자 상호간의 비례 균형이 혼연일체가 되어 미묘한 조형미가 이루어지는‚ 문자(文字)를 소재로 하는 조형예술(造形藝術)이다. 서예는 점과 선의 구성과 비례 균형에 따라 이루어지는 공간미(空間美)와 필순(筆順)에 따른 운필의 강약 등으로 전개되는 율동미를 특징으로 하며‚ 또한 소재가 자연의 구체적인 사물이 아닌 글자라는 추상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다른 예술분야와는 구별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먹은 옛날부터 오채(五彩)를 겸하였다고 하는데‚ 즉 검정색이지만 농담(濃?)·윤갈(潤渴)·선염(渲染)·비백(飛白) 등이 운필에 따라 여러 색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영묘(靈?)한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서예는 중국문화권 안에 있는 여러 나라에서 특유의 예술이었으며‚ 중국에서 서예는 독립된 훌륭한 예술일 뿐만 아니라 문학·회화와 더불어‚ 또는 그들 예술과 서로 융합하면서 중국문화사상 오랫동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여 왔다. 서예는 광의로는 세계 각국에서 쓰이는 글씨의 표현 형식을 말하지만 보통 한자 및 한글의 서체를 말한다. 한문서체에는 갑골문(甲骨文)·전서(篆書)·예서(隷書)·해서(楷書)·행서(行書)·초서(草書) 등이 있다. 본 작품은 이러한 한문 서체 중 전서로 쓰여졌고‚ 시기는 근대 20세기이다. 전서는 대전(?篆)과 소전(小篆)으로 나뉜다. 대전은 중국 주(周)나라 의왕(宜?) 때 태사(?史) 주(?)가 갑골(甲骨)·금석문(金石文) 등 고체(古體)를 정비하고 필획(筆畵)을 늘려 만든 서체로‚ 그는 문자의 짜임을 실용적으로 간소화시켰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춘추(春秋) 말기(BC 5세기경)의 《석고문(石鼓文)》이 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문자의 통일을 꾀할 때에‚ 진(秦)나라 시황제 때 재상 이사(李斯:?∼BC 208)가 대전의 서체를 더 간략하게 만들어‚ 이제까지 여러 지방에서 쓰이던 각종 자체(字體)를 정리·통일하였다. 그 서체가 소전이다. 소전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진대(秦代) BC 219년에 만들어진 《태산각석(泰山刻石)》이 있다. 소전은 모두가 원필이며 자형이 아래위로 길다. 이들 전서는 당시 일반적으로 쓰이전서(篆書)를 잘 썼고‚ 그림은 화조(花鳥)를 잘 그렸으며‚ 서화감식에도 뛰어났다. 작품에 《산수도(山水圖)》 《절지도(折枝圖)》 등이 있다. 본 작품은 그가 즐겨 썼던 오창석체의 전서라고 할 수 있다. 던 서체이지만 전서를 약(略)해서 사무용으로 쓰기 위해 예서(隸書)가 만들어졌으며 빨리 쓰기 위한 필기체로서 초서(草書)가 생겼다. 다시 해(楷)·행(行)서가 생겨 일반적으로 해·행·초가 쓰였으나 송(宋)·원(元)대에 복고조(復古調)의 기운이 생겨 주목되어 청대(?代)에는 전·예서의 연구가 왕성하게 행해졌다. 본 작품은 서화가 이한복(李漢福: 1897-1940)이 쓴 것으로‚ 이한복의 본관은 전의(全義)이고‚ 호는 수재(壽齋)와 무호(無號)이며‚ 조석진(趙錫晉) 및 안중식(安中植)의 문인이었다. 그는 어려서 조석진과 안중식에게 전통화법을 배운 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東京]미술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진명여고(進明女高)에서 교편생활을 하였다. 그는 서예에서는 중국 청나라 서화가였던 오창석(吳昌碩)의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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