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문
- 홈
곡운 김수증이 쓴 「고산구곡담기」
- 저작물명
- 곡운 김수증이 쓴 「고산구곡담기」
- 저작(권)자
-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 출처
- 공표년도
- 창작년도
- 분류(장르)
- 어문
UCI 로고
- 요약정보
- 관람후기(0) 곡운 김수증이 쓴 「고산구곡담기」 이명칭 곡운김수증선생필「고산구곡담기」 한자명칭 谷雲 金壽增 筆 高山九曲潭記(六一帖 中) 국적/시대 한국(韓國)-조선(朝鮮) <17세기 중반-18세기 초반> 재질 사직(絲織)-견(絹) / 종이에 먹 작가 김수증(金壽增‚ 1624-1701) 용도 문화예술(文化藝術)-서화(書?) 크기 31.5×20cm 소장품번호 덕수(德壽)-002932-006 공유하기 김수증(金壽增‚ 1624-1701)이 예서(隸書)로 쓴 <고산구곡담기>이다. 김수증은 호는 곡운(谷雲)이다. 그는 17세기의 문인이자 성리학자로 서인(西人) 노론(老論)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의 손자인 그는 1675년 동생 김수항(金壽?‚ 1629-1689)과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유배되자 화천 곡운산(谷雲山)에 은거하였고‚ 기사환국 후 김수항이 사약을 받자 더 이상 속세에 나아가지 않았다. 글씨로 이름 높았던 그는 특히 예서에 뛰어났으며‚ 금석문에도 조예가 깊어 아들 김창숙(金昌肅‚ 1651-1673)과 함께 신라‚ 고려의 금석 탁본을 널리 수집했다. <고산구곡담기>는 조선의 대표적 문장가 간이(簡易) 최립(崔?)의 글로‚ 율곡 이이가 머물렀던 황해도 고산구곡담의 모습을 주자(朱子)의 무이구곡(武?九曲)과 같이 묘사한 것이다.김수증의 예서는 중국 한대(漢代)의 예서와는 다른 형태로‚ 독특한 개성을 보여준다. 이 첩은 <육일첩> 제 4책에 수록된 것으로‚ <고산구곡담기> 외에도 이이(李?)의 <고산구곡가>‚ 송시열(宋時烈)의 <영고산구곡가(詠高山九曲歌)>가 있으며 모두 예서로 썼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곡운 김수증이 쓴 「고산구곡담기」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1유형)
- 저작물 파일 유형
- 저작물 속성
- 1 차 저작물
- 공동저작자
- 1유형
- 수집연계 URL
- http://www.museum.go.kr
- 분류(장르)
- 어문
- 원문제공
-
원문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