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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대에서 바라본 금강산‚ ≪해산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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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천일대에서 바라본 금강산‚ ≪해산첩≫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수영(字 君芳‚ 號 之又齋)은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시문서화詩文書?와 기행사경紀行寫景‚ 지도地圖를 제작하며 일생을 보냈다. 그는 산수화를 비롯한 다양한 화제를 다루면서 독창적인 화풍을 형성했다. 《해산첩》은 정사년(1797) 가을‚ 그의 친구인 여춘영呂春永(1734~1812)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그린 초본을 바탕으로 2년 후에 화첩으로 제작한 것이다. 화첩의 표지에 ‘해산첩涇山帖’이라고 적혀 있으며‚ 23점의 그림과 3점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 그림은 담탕?宕(생몰년 미상)이라는 사람이 그린 수묵산수화이고‚ 다음부터는 정수영의 그림으로 금강산 전체를 그린 <금강전도金剛全圖>부터 <옹천에서 멀리 바라보다甕遷遠眺>까지 내외금강內?金剛‚ 해금강涇金剛‚ 고성高城의 명승지名勝地를 여정에 따라 담아냈다. 글은 <동유기東遊記>를 비롯해 모두 정수영의 글씨이고‚ 이외에도 그림의 화면 위쪽 여백이나 좌우 여백에 일정‚ 풍경‚ 유래 등을 자세히 기술한 기행문이 실려 있다. 이 화첩에는 분방한 필치와 간략한 묘사‚ 몽당붓의 사용‚ 담채의 선별적 사용‚ 윤곽이 선명한 각진 바위 등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장면은 《해산첩》의 제 9면인 <천일대에서 바라본 금강산> 이다. 정수영의 글과 인문 自表訓直至正陽寺. 寺前懸崖‚ 肩輿亦難. ?上崖‚ 有樓‚ 榜歇?. 遂登樓‚ 未及眺望‚ 心目炫煌. 俄而據檻憑視‚ 自迦葉南至內水岾‚ 是謂衆香城‚ 別無削?出?之峯‚ 微微若尖隱‚ 若城堞狀‚ 裏面許太尖峯‚ 是爲萬二千峯. 都白色‚ 凹處皆靑墨黑. 內水岾頗低‚ 南爲五仙峯‚ 尖尖削立而白. 又?起爲穴望峯. 峯?而秀‚ 其南削低‚ 爲丞相峯‚ 微黑而北?. 又微高‚ 頭稍白‚ 其南森列卉馳‚ ?是長安東北諸峯. 間白而?都靑黑. 香城西一枝落爲?香爐‚ 又落爲小香爐‚ ?靑黑‚ 尖頭帶白. 其下別峯特峙‚ 是爲靑鶴臺. 疊石成臺‚ 臺上布列異石焉. 自迦葉至長慶‚ ??列嶽‚ 凜若雪霜‚ 使人?魄而叫狂. 其翌日復上樓. 山之氣勢‚ 與作日雖同‚ 而形色則隨時變態‚ 不可模狀. 然而?齋‚ 石癡所?者‚ 詳?各異‚ 似未盡善‚ 故余又展紙構成一草. 표훈사에서 곧장 정양사正陽寺로 갔다. 절 앞에 벼랑이 있어서 가마로도 가기가 어려웠다. 가까스로 벼랑을 올라가니 누각이 있는데 헐성루歇?樓라고 현판이 붙어 있었다. 누에 올라가서 미처 조망도 못했는데 눈이 아찔하여 정신이 어지러웠다. 잠깐 동안 난간에 기대어 진정해서 바라보니 가섭봉迦葉峰에서 남쪽으로 내수참內水站까지를 중향성衆香城이라고 하는데‚ 보기에 백옥을 깎아 세운 듯한 하늘에 솟아오른 봉우리는 별로 없고‚ 잔잔히 뾰족한 듯도 하고 그렇지 않은 듯도 한 것이 성처럼 둘러 있는데‚ 그 속에 뾰족뾰족한 봉우리가 수없이 많다. 이것이 일만 이천 봉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흰 색깔인데 움푹 들어간 곳은 모두 검푸르다. 내수참은 약간 낮고‚ 그 남쪽이 오선봉五仙峰인데 깎아 세운 것처럼 뾰족뾰족하면서 빛깔이 희다. 또 우뚝 솟은 것은 혈망봉穴望峰이다. 봉우리가 크고 높이 솟았으며‚ 그 남쪽으로 있는 약간 낮은 것은 승상봉丞相峰인데 빛이 좀 검고 북을 굽어보고 있다. 또 조금씩 높아지면서 꼭대기는 약간 흰빛을 띠었고 그 남쪽으로 나열하여 달려가는데‚ 이것은 모두 장안사 동북쪽에 있는 여러 봉우리들이다. 간혹 희기도 하나 대체로 검푸른 빛이었다. 중향성 서쪽으로 뻗은 산맥이 떨어져서 대향로봉이 되고 또 소향로봉이 되었는데‚ 모두 검푸르며 꼭대기의 뾰족한 부분은 흰빛이다. 그 아래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있는데 이것이 청학대靑鶴臺이다. 돌이 쌓여서 대가 이루어졌고 대 위에는 이상한 돌들이 널려 있었다. 가섭봉에서 장경암長慶庵까지는 하늘에 솟은 모든 봉우리가 서릿발처럼 쭈뼛쭈뼛하여 사람이 정신을 잃고 소리를 지르게 한다. 그 다음날 다시 누에 올랐다. 산의 기세는 어제 보던 것과 다름이 없으나 형형색색이 시간을 따라 형태가 변하는 것이 이것을 그려낼 수가 없다. 그런데 현재?齋 심사정沈師正(1707~1769)과 석치石癡 정철조鄭喆祚(1730∼1781)*가 그린 것도 어떤 것은 상세히‚ 어떤 것은 대충 그려서 다 잘했다고는 할 수 없다. 나는 종이를 펴놓고 한 장의 스케치를 만들어 보았다. 印文 | 「之又齋」‚ 「無爲而無不爲君芳」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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