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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선사 고탁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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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신행선사 고탁첩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신행선사 고탁첩은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단속사지(斷俗寺址)에 있던 통일신라 혜공왕대의 선승 신행선사의 비를 탁본한 것이다. 신행선사는 장년에 출가하여 당나라에서 지공(志空) 밑에서 공부하고 신라로 돌아와 단속사에서 불법을 선양한 고승이다. 신행선사비는 813년(헌덕왕 5)에 건립되었는데‚ 비는 사라졌다. 현재 비의 탁본이 전해오며‚ 유희해(劉喜涇)의 ????해동금석원(涇東金石苑)????에 전문이 실려 있다. 이 신행선사비는 높이 5.6척‚ 너비 2.5척‚ 1행 63자이고 비문은 모두 29행으로 되어 있다. 비문은 김헌정(金?貞)이 지었으며‚ 승(僧) 영업(靈業)이 썼다. 이 비문의 서체는 행서로 쓰였고‚ 글자체는 왕희지(?羲之)의 글씨를 집자한 ????집자성교서(集字聖敎序)????와 매우 비슷하다. 글씨를 쓴 영업은 당나라에서 유학한 승려로 유학할 당시 당나라에서 유행한 왕희지체를 그대로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당시 신라에서도 왕희지의 글씨가 전해서 유행하였다. 영업의 글씨는 ????집자성교서????에 보이는 불균형을 정리하고 글자의 균형을 이룬 품격은 영업의 글씨가 지니는 독자적인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글씨는 다소 경직된 점은 있지만 힘차고 여유있는 점은 김생(金生)과 함께 신라 서예가의 쌍벽이라 할 수 있다. 이 고탁첩은 1면은 6행을 되어 있고‚ 1행은 11자로 집자를 하였고‚ 모두 27면으로 되어 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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