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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창 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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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오세창 전서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오세창(吳世昌)은 근대의 언론인이자‚ 서화연구가로 자(字)는 중명(仲銘)‚ 호는 위창(葦滄)이다. 그는 구한말의 역관이던 오경석(吳慶錫)의 큰아들로 18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886년 박문국(博文局) 주사로 한성주보(漢城週報) 기자를 겸했고‚ 1894년 군국기무처 낭청총재(郎廳總裁) 비서관이 되었다. 1896년 일본 문부성으로부터 외국어 학교 조선어 교사로 초빙되어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1902년 개화당사건으로 일본에 망명하였다가 돌아와‚ 만세보(萬歲報)‚ 대한민보사(?韓民報社) 사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삼일운동 때 천도교를 대표해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문에 서명하여 3년간 투옥되었다. 출옥 후 오세창은 학예에 전념하였고‚ 해방 후 매일신보(每日新報)‚ 서울신문 명예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오세창은 전각(篆刻)과 서예에 능했는데‚ 특히 전서(篆書)에 심취하였다. 그는 부친인 오경석이 수집해 놓은 많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서화사에 관련된 문헌을 뽑아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을 편찬했고‚ 우리나라 역대의 서화를 모아 ????근묵(槿墨)????‚ ????근역서휘(槿域書彙)????‚ ????근역화휘(槿域畵彙)???? 등의 서화첩을 편집하였다. 이 전서는 서예에 능했고‚ 특히 전서에 심취했던 오세창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글이다. 낙천여산초당설(樂?廬山草堂設) 목탑사소병이칠(木榻四素屛二漆) 이 전서의 뜻은 천성을 즐기려 여산초당에 나무탑상 4개와 무채색 병풍을 마련한다는 내용이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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