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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귀부
- 저작물명
- 석조귀부
- 저작(권)자
-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 출처
- 공표년도
- 창작년도
- 2015-01-21
- 분류(장르)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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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정보
- <정의> 거북 모양의 비석받침. <유래 및 발달과정> 거북 모양의 잔등에 장방형의 받침〔碑座〕을 마련하고 그 위에 비신(碑身)을 세우는 일은 중국 당(唐)나라 때부터 성행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에 비석(碑石)을 세울 때에는 일반적으로 땅에 묻거나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했다. 통일신라 이후 당의 영향을 받아 귀부(龜趺)를 비좌(碑座)로 삼게 되었고‚ 그 뒤 조선시대까지 석비(石碑)의 전형적인 형식이 되었다. 현존하는 귀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661년에 세워진 태종무열왕릉비(?宗武烈?陵碑)(국보 제25호)의 귀부로서 이수(首)와 함께 뛰어난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러나 8-9세기를 거치면서 거북의 머리는 용으로 변하고‚ 표현법도 사실적인 형태에서 점차 위엄 있고 추상적인 형태로 바뀌었다. 따라서 고려시대에는 용의 머리에 거북의 몸을 한 형태가 주종을 이루었다. 12세기경에는 귀부 형태의 비석받침이 갑자기 대석(臺石) 형태로 바뀌면서 귀부는 차츰 사라진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귀부는 극소수이며‚ 퇴화되고 도식화되었다. 비문(碑文)을 통해 조성연대를 알 수 있어서 당시의 조각양식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납작한 타원형의 돌에 조각되어 있으며 안면부의 이목구비(耳目口鼻)와 목근육의 표현은 비교적 뚜렷하다. 눈은 크고 튀어나와 있으며 입에는 보주(寶?)를 물고 있다. 등에는 마름모꼴로 음각선(陰刻線)을 넣어 귀갑(龜甲)을 표현했으며 비(碑)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세로 8cm‚ 가로 33cm 정도의 홈에는 보수된 흔적이 있다. 전체적으로 마모(磨耗)가 심한 편이다.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992. 김원룡 감수‚『한국미술문화의 이해』‚ 예경‚ 1994.
- 저작물 파일 유형
- 저작물 속성
- 1 차 저작물
- 공동저작자
- 1유형
- 수집연계 URL
- http://www.emuseum.go.kr
- 분류(장르)
- 사진
- 원문제공
-
원문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