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지장보살도

추천0 조회수 25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지장보살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석가여래가 입멸한 뒤부터 미륵불이 출현하기 전에 6도(六道)의 중생을 교화‚ 구제한다는‚ 대자대비의 보살인 지장보살을 그린 불화(佛畵). <유래 및 발달과정> 지장보살의 자비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지장보살에 대한 신앙이 성행하여 대표적인 불교신앙 중의 하나로 유포되었다. 특히 지옥에 떨어질 것을 걱정하는 후손들에 의해서 지장보살은 널리 신봉되었다. 즉 현실의 죄나 고통을 없애 주는 보살로서는 관음보살이 으뜸인 데 비하여‚ 죽은 뒤의 육도윤회나 지옥에 떨어지는 고통을 구제해 주는 데는 지장보살이 으뜸인 것이다. 따라서 지장보살은 육도윤회를 심판하는 명부(冥府)의 구세주로 등장하게 되었고‚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명부전(冥府殿)의 주존으로 신앙하게 되었다. 『지장시륜경(地藏十輪經)』‚ 『지장보살본원경(地裝菩薩本願經)』에 이르면 지장보살은 이미 여래의 경지에 이르렀고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고 한다. 그 형상은 삭발한 스님의 모습으로 왼손에 보주를 들고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머리에 두건을 쓰고 손에는 보주와 석장을 지닌 스님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두건을 쓴 지장보살의 모습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중앙아시아의 돈황이나 투르판‚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도상이다. 또한 단독상일 경우는 좌우에 명부를 주재하는 시왕(十?)을 거느리고 있으나 그 외에는 관음보살과 함께 아미타불의 협시나 아미타 8대보살의 하나로 표현되었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때부터 단독상 또는 육도도(六道圖)‚ 지장시왕도(地藏十?圖)로 그려진 예가 다수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경덕왕 때 진표율사에 의해서 지장보살이 신앙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에 이르러 더욱 유행을 보게 되었다. 불화의 형식을 살펴보면 단독의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 무독귀왕과 도명존자의 지장보살삼존도(地藏菩薩三尊圖)‚ 지장과 권속‚ 시왕을 그린 지장시왕도(地藏十?圖)‚ 아미타팔대보살(阿彌陀八?菩薩)의 협시로 등장하는 지장보살도 등으로 구별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중앙의 지장보살(地藏菩薩)은 결가부좌(結跏趺坐)에 화불(化佛)이 표현된 석장(錫杖)을 잡고 있다. 화려한 문양이 그려진 적색의 통견(通肩)의 대의를 입고‚ 어깨에 원형의 가사장식(袈裟裝飾)이 있다.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이 그려져 있으며 주변에 상서로운 구름을 표현하였다. 지장보살의 좌우에는 양관(梁冠)에 대대(?帶)를 잡고 있는 관인형(官人形) 인물과 합장(合掌)한 승형(僧形) 인물이 있다. 화면의 상단에는 경책(經冊)이 있는 관(冠)을 쓴 관인형(官人形) 인물이 있으며 양손에 홀(笏)을 잡고 있다. 그 옆으로 금수(禽?)의 머리를 한 반인반수(半人半?)의 인물이 서 있다.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992. 김원룡 감수‚『한국미술문화의 이해』‚ 예경‚ 1994.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