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振宇筆 묵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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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振宇筆 묵죽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김진우는 사군자 중에서도 특히 대나무를 잘 그렸던 것으로 평가되는데‚ 민족주의 지식인 사이에 그 작품이 높은 인기를 끌었다. 1927년에 열린 조선미전에서 출품한 대나무 그림에 대하여 김복진은“작가가 기도하였는 바 본의(本意)인 특제청시(特製靑矢)는 완전히 그렇다. 완전히 심사위원의 뇌리를 관통하고‚ 그 위력으로 모든 방향에 향하여 정히 난사하려 하고자 ”한다고 하였다.(김복진‚ 『동아일보』1927. 5.15-17) 김복진이 말하는 특제청시‚ 즉 남달리 만든 푸른 화살을 화폭에 담아내었던 것이다. 이 푸른 화살은“돌연 병장기로 변해…서릿발처럼 예리하니‚ 무엇이라도 돌파할 수 있는 위력을 지닌 듯…죽창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하며‚ 탄력 있는 댓잎은 마치 유엽전(柳葉箭)같은 느낌을 자아내게 ”(간송문화 40호‚ 61쪽) 하였다. 이러한 느낌은 김진우가 위정척사 사상은 계승한 의병장 유인석의 문하에서 항일독립투사로 활동하였던 그의 개인적 성향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조선인이 휩쓸던 조선미전 서예 부분 및 사군자 부분을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1926년 이후 김진우 양식은 민족을 상징하는 미술로 떠올랐으며‚ 그러한 경향에 맞서던 김용준은 김진우의 대나무 그림에 대하여‘전인미답의 화경’이며‚‘조선의 한 자랑’이라고 평했다.(『삼천리』1931. 11) 또한 1927년부터 앞선 시기에 유행하던 김규구(金圭鎭)의 호방한 대나무 대신 김진우의 양식을 따른 화가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1934년에 이르러 이태진은 김진우에 대하여 ‘그래서 수완(手腕)의 기술만으로는 죽(竹)의 성격을 완전히 포착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니‚ 작자의 생활부터 죽과 같이 청허(?虛)하지 못할 것인데‚ 죽을 죽으로 다루기 어려울 것이다. 모든 그림이 다 그렇겠지만 더욱 죽이나 난(蘭)을 그리는 자리에서만은 대가에서 집념해서는 아니된다. (김진우)씨의 작품이 간혹 화공의 작품으로서 항간에 전락함을 볼 때‚ 또 그 작품이 0시 개념적으로 시종된 것을 발견할 때 우리는 한 가닥의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김진우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김진우의 대나무가 김진우의 그림에 대해서는 사군자를 그다지 달가와 하지 않는 북한에서도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김진우의 대그림들은 규모가 크며‚ 활달하고 생동한 필치와 웅건한 구도‚ 산질감 등으로 하여 뛰어나다. 특히 큰 붓으로 거침없이 그어나간 필치는 화가의 창작적 개성을 잘 말해주고 있을 뿐 아니라 일제의 탄압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워나가려는 굳센 신념과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창작에서 대의 형상은 화가의 원숙한 기교를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라고 극찬하고 있다. 【참고문헌】 민족문화대백과사전 韓國繪畵?觀(劉復烈 編‚ 文敎院‚ 1969)‚ 澗松文華 40 (韓國民族美術硏究所‚ 1991). 한국근대미술의 역사 (최열‚ 열화당‚ 1998)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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