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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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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단군상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단군(檀君)은 우리 민족의 시조로서 고조선(古朝鮮 : 檀君朝鮮)의 첫 임금이며‚ 단군(壇君)·단군왕검(壇君?儉)·단웅천왕(檀雄??)이라고도 한다. 천제(?帝)인 환인(桓因)의 손자이며‚ 환웅(桓雄)의 아들로 서기전 2333년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하였다. 고조선과 단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의 ≪위서 魏書≫와 우리 나라의 ≪고기 古記≫를 인용한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을 들 수 있다. 반면에 정사인 ≪삼국사기≫에는 이와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 대비된다. 단군의 개국신화는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라 많은 해석이 나왔다. 한 예로서 이 신화는 고조선의 한 부족(部族)신화이던 것이‚ 훗날 고려시대에 대몽항쟁(對蒙抗爭) 등 민족의 단합이 요구되는 시대를 맞아서 민족의 시조로 받들게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단군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는 《삼국유사》의 편찬시기가 앞에서 언급한 시대와 거의 같다는 점도 유의할 만하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평양에 사당을 짓고‚ 단군과 고구려의 동명왕(東明?)을 함께 모시기도 하였다. 한편‚ 민족의 형성과정과 관련된 단군신화에서 중심이 되는 곰 숭배사상이 한국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등지에 널리 퍼져 있던 고(古)아시아족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조상신이라는 점에서‚ 단군신화의 시대와 성격을 한국의 신석기시대 주민과 관련시키는 견해도 있다. 물론 이 신화를 청동기시대의 산물로 보는 견해도 있고‚ 지배자의 출현을 빛내는 신화로 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단군신화 시대를 무문토기문화(無文土器文化)와 관련시키면서 환웅족(桓雄族)의 등장에서 그 의미를 찾으려는 견해도 있다. 이와 반대로‚ 역사과학의 입장에서 신화라는 것은 고대인의 한 관념형태이므로 단군신화를 곧 역사적 사실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원래 신화는 역사적인 사실 바로 그 자체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 속에 담겨 있는 역사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으므로 어떤 맥락으로든 간에 신화의 의미는 풀려야 한다. 그러나 단군의 신화가 그대로 왕조사(?朝史)인 것처럼 해석하는 것도 무리이다. 아무튼 단군신화는 한민족이 수난을 당하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족의 단합을 요구하는 구심체적(求心體的) 역할을 해왔다. 현재 사직공원 안 단군전에 봉안하고 있는 국조 단군 영정만이 정부표준영정이기 때문에 그 이전이건 이후이건 개인이나 단체에서 단군영정을 제작하였거나 제작하려면 동 영정의 모사만이 허용되어야 할 것이고 또 모사할 때에도 반드시 동 위원회의 사전심의를 받아 제작하는 것이 원칙이라 할 것이다. 더욱이 다른 모양의 영정제작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디지털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EncyKorea)" 네이버 백과사전(http://www.naver.com)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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