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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죽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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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고목죽석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허백련(許百鍊)이 묵으로 그린 대나무 그림. <작가설명>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1891-1977)은 전라남도 진도 출생으로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그는 소치(小痴) 허련(許鍊)의 종고손자이다. 어려서부터 마을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우고 구한말 한학의 대가 정만조(鄭萬朝)에게 한학을 익혔으며 소치의 아들이었던 미산(米山) 허형(許灐)에게 한국화의 기초를 배웠다. 신학문에 뜻을 품고 서울로 올라와 기호학교(畿湖學校)에 입학하였고 1913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동경의 메이지대학(明治?學)에서 법정학을 전공하려다가 그림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동경에 약 6년간 머무르며 당시 일본의 대표적 남종화가였던 고무로(小室翠雲)의 영향을 받아 정통 남종산수화를 지향하게 되었다. 1918년 귀국하였고 1922년 서울로 올라와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전통적인 산수화를 출품하여 입상하면서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1927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고 그뒤 전라남도 광주에 정착하여 독자적 화필생활과 문하생 지도에 전념하였다. 1938년에는 연진회(鍊眞會)를 발족시켜 호남지역의 서화 전통을 위해 노력하였다. 1949년에 대한민국미술전람회가 시작되자 추천작가‚ 초대작가로 추대되고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작품설명> 허백련은 한시와 고전화론(古典畵論)에 통달하고 서법(書法)에서도 독특한 경지를 보인 시서화(詩書畵) 겸전의 전형적인 남종화가로 호남 서화계의 상징적 존재로 추앙되었다. 그는 생전에 정신적으로는 추사체를 완성한 김정희(金正喜)를‚ 예술적으로는 남종화의 거두인 황공망(黃公望)을 따르고 있음을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를 중시하는 남종화의 시서화 일체의 이상을 추구하였음을 의미한다. 즉 그는 오로지 고법(古法)에 충실한 화격을 자신의 세계로 심화시키는 방향을 고수하였다. 이 작품은 나뭇가지와 괴석에 앉아 서로 마주보고 있는 새를 중심소재로 대나무와 꽃을 어울리게 배치하였다. <참고문헌> 『아름다운 그림들과 한국은행』((한국은행‚ 국립현대미술관‚ 2000) 『毅齋 許百鍊』(예경산업사‚ 1989) 『한국정신문화연구원』-허백련(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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