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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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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묵죽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이응노(李應魯)가 1939년에 그린 묵죽도. <작가설명> 고암(顧菴) 이응노(李應魯‚ 1904-1989)는 충남 홍성에서 출생하였다. 보통학교와 서당을 다녔으나 집안사정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17세때부터 지방화가의 문하에 들어가 화가로서의 수업을 받았다. 20세때 상경하여 당대 서화계의 대가인 해강(涇岡) 김규진(金圭鎭)의 집에 기숙하면서 화가로서의 훈련을 받았다. 김규진 문하에서 문인화를 공부한 뒤 1924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청죽>으로 입선해 미술계에 등단하였다. 1938년에 동경에 건너가 서양화풍의 사실적인 동양화를 시도하였다. 그 뒤 1958년 파리로 건너가 작품 활동을 한 그는 표현주의적 추상인 문자추상이라는 독특한 경지를 개척했다. 그러나 동베를린공작단사건에 연루되어 3년 동안 옥고를 치른 뒤 1970년 프랑스로 돌아가 끝내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파리에서 죽었다. <작품설명> 그의 작품세계를 살펴보면 그는 처음엔 묵죽화가로 주목받기 시작했으나 일본유학을 통해 장식적인 색채의 새로운 화풍과 다양한 기법을 학습하였다. 그리하여 수묵화 위주의 전통 문인화로부터 점차 벗어나 전통회화를 현대 서양화풍으로 재해석하고자 노력하였다. 1946년 이후로는 배렴‚ 장우성‚ 김영기‚ 이유태‚ 조중현 등과 함께 단구미술원(檀丘美術院)을 조직하여 새로운 한국화 작업에 몰두하였다. 자연의 사실을 기초로 하여 그것을 사의적으로 표현했는데 역동적이고 풍부한 감정을 표현하는 반추상적인 것이었다. 1958년 프랑스 파리에 체재하면서 꼴라쥬기법을 통한 표현주의적인 시도로 바뀌었고 당시 동양의 서예정신을 밑바탕으로 한 기호론적인 작품경향으로 변모하였다. 이 작품은 농담묵으로 시원스럽게 뻗은 여러 그루의 세죽(細竹)을 그렸다. 윤묵(潤墨)으로 풍죽의 대나무잎을 표현하였는데‚ 활달한 그의 필력이 잘 나타나 있다. <참고문헌> 고암미술연구소‚『고암 이응노‚ 삶과 예술』(얼과 알‚ 2000) 오광수‚ 『20인의 한국 현미술가』(시공사‚ 1997) 『한국 근현대 회화』(홍익대학교박물관‚ 1999)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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