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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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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모란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김용진(金容鎭)이 1956년에 그린 수묵담채화. <작가설명> 영운(潁雲) 김용진(金容鎭‚ 1878-1968)은 특진관(特進官) 흥규(興圭)와 대원군의 외손녀인 임천 조씨(林川趙氏)의 삼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참판 정규(貞圭)의 양자로 들어갔다. 당시의 세력층인 안동김씨 문중을 배경으로 자라난 그는 한말에 세마(?馬)‚ 수원군수 및 내부(內部)의 지방국장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1905년 무렵 관직을 떠난 뒤에는 서화에만 전념하였다. 1949년부터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서예부 심사위원과 고문으로 활동하였으며 동방연서회(東方硏書會)의 명예회장과 한국서예가협회의 고문을 역임하였다. 글씨는 안진경체(顔眞卿體)의 해서와 한예(漢隸)에 바탕을 둔 예서 및 고격한 행서를 주로 썼고 그림은 매난국죽의 사군자와 수선화‚ 모란‚ 등꽃‚ 연꽃‚ 장미 등의 문인화를 즐겨 그렸다. 문인화 수법은 근대 중국 상해파의 대표적 화가 오창석(吳昌碩)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묵란과 묵죽에서는 민영익의 필법과 감화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만년의 꽃그림에서 볼 수 있는 풍부한 색채구사와 전통적 품격의 필치는 그의 독자적인 수법이다. <작품설명> 김용진은 5세때부터 지운영의 문하에서 수업했고 추사의 제자인 강위(?瑋‚ 1820-1884)의 문하생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추사계열의 문인화론을 접하는 한편‚ 그림에서 잘 보이듯이 근대초기에 크게 유행한 중국 상해파의 양식을 적극 수용하며 새로운 시대의 정서와 미감을 그려냈다. 이 그림은 김용진이 성신여중고 2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그린 작품이다. <참고문헌> 『潁雲 金容鎭 回顧展』(예술의 전당‚ 199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김용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8)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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