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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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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탕건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망건(網巾)의 덮개로 쓰거나 갓[黑笠] 아래 받쳐 쓰던 건(巾). <일반적형태 및 특징> 김성규 유품으로 조선시대 남성들의 관모(冠帽)의 하나인 탕건(宕巾)이다. 탕건은 조선시대 벼슬아치가 망건(網巾)의 덮개로 쓰거나 갓[黑笠] 아래 받쳐 쓰던 건이다. 원래는 독립된 하나의 관모였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관직자가 평상시에 관을 대신하여 썼고‚ 망건의 덮개‚ 입모(笠帽)의 받침으로 되었다. 대나무나 말총 등을 엮어서 틀을 만들고 표면에 옻칠을 하여 곱게 말린 후 머리에 쓴다. 평상시에 쓰는 모자로 집안에서 상투머리 상태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간편하게 착용하도록 한 것으로 목침에 서랍을 만들어 보관할 정도로 늘 몸 가까이에 두고 사용하였다. 그 형태로 보아 복두와 사모(紗帽)의 영향을 받아 생긴 것으로 짐작되는데 앞과 뒤를 각이 지게 하나 복두나 사모처럼 뿔이 달리지는 않는다. 앞면을 잘록하게 맵시를 부리기도 한다. 말총으로 짰기 때문에 착용하는데 부담을 주지 않고 잘 망가지지도 않으며 또한 사(紗)나 견(絹)과 달리 땀이나 기름때가 잘 묻지도 않는다. 탕건은 속칭 `감투`라고도 하여 벼슬에 오르는 것을 `감투 쓴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감투는 턱이 없이 반듯하게 생긴 것으로 탕건과는 그 형태가 다르다. <세부사항> *김성규 김성규는 조선후기의 문신·학자이며 자는 보형(寶衡). 호는 초정으로 연풍(延豊) 출생이다. 유학(儒學)과 수학(數學)을 공부하고 1887년(고종 24) 광무국주사(鑛務局主事)가 되어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주차영덕아의법전권공사(箚英德俄義法全權公使: 영국·독일·러시아·벨기에·프랑스공사)의 서기관이 되어 유럽 지역으로 나갔다가 1889년 귀국하였다. 1891년 식년문과에 급제‚ 승정원급분(承政院給分)·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 등을 지내고 이어 고창(高敞)·장성(長城) 등의 군수로서 선정을 베풀었다. 1904년 정부가 지방의 부정부패를 일소하고자 청렴결백한 관리를 뽑아 지방으로 보내게 되자 강원도순찰사로 뽑혀 강원도의 탐관오리를 숙청하였으나 조정권신들의 모함을 받아 1905년 파직되었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 무안(務安)으로 옮겨 목포·장성 등지에 학교를 세워 후진을 양성하는 교육사업에 힘썼으며‚ 1908년 조정에서 정2품의 품계를 내렸으나 받지 않았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한때 나병에 걸렸는데 이때 비관 끝에 《병오사(病烏詞)》를 지었다. 시문에 능하고 글씨도 잘 썼으며 문집에 《초정집》이 있다.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6‚1991 / 유희경‚“한국복식사연구”‚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75 / 김영숙‚“한국복식문화사전”‚미술문화‚1998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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