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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500 WON(앞면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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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한국 500 WON(앞면 이순신)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한국지폐 500 WON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한국은행에서 발행한 한국 500원의 지폐로 앞면에는 충무공 이순신과 거북선‚ 뒷면에는 현충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세부사항> *이순신 (李舜臣 1545 - 1598 ) 본관 덕수(德水)‚ 자 여해(汝諧)‚ 시호 충무(忠武)‚ 서울 출생이다. 1576년(선조 9) 병과(丙科)로 급제‚ 권지훈련원봉사로 처음 관직에 나갔으며 이어 함경도의 동구비보권관에 보직‚ 이듬해 발포수군만호를 거쳐 1583년(선조 16) 건원보권관·훈련원참군을 지냈다. 1586년 사복시주부를 거쳐 조산보만호 때는 호인(胡人)의 침입을 막지 못한 데 대해 정죄(定罪)하려 하자 그 원인이 첨병(減兵)을 거절한 데 있다 하여 자기의 정당성을 끝내 주장하다 백의종군(白衣從軍)의 길에 올랐다. 그 뒤 전라도관찰사 이광(李?)에게 발탁되어 전라도의 조방장이 되고‚ 1589년(선조 22) 선전관·정읍현감 등 미관말직을 지내다가 1591년(선조 24)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절충장군·진도군수 등을 지내고 같은 해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승진‚ 좌수영에 부임하여 군비 확충에 힘썼다. 이듬 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에서 적선 30여 척을 격파하고 이어 사천에서 거북선을 처음 사용‚ 적선 13척을 분쇄한 것을 비롯하여 당포에서 20척‚ 당항포에서 100여 척을 각각 격파하여‚ 자헌대부에 승품되고 7월 한산도에서 적선 70척을 무찔러 한산도대첩의 큰 무공을 세웠다. 이어 정헌대부에 오르고 다시 가토 요시아키[加?嘉明]의 수군을 안골포(창원군 웅천면)에서 격파하고 9월 적군의 근거지 부산에 쳐들어가 100여 척을 부수었다. 1593년(선조 26) 다시 부산과 웅천의 적 수군을 격파‚ 남해안 일대의 적 수군을 완전히 일소하고 한산도로 진을 옮겨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이듬해 명나라 수군이 내원(來援)하자 죽도에 진을 옮기고‚ 장문포에서 왜군을 격파‚ 적군의 후방을 교란하고 서해안으로 진출하려는 적을 막아 왜군의 작전에 큰 타격을 가하였고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훈련을 강화하고 군비확충·난민구제·산업장려 등에 힘썼다. 1597년 원균(元均)의 모함으로 서울에 압송되어 사형을 받게 되었으나 우의정 정탁(鄭琢)의 변호로 도원수 권율(權慄)의 막하에서 두 번째 백의종군을 하였다. 이에 앞서 명·일 간의 강화회담이 깨어지자 왜군이 다시 침입하여‚ 정유재란 때 원균이 참패하자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되어‚ 12척의 함선과 빈약한 병력을 거느리고 명량에서 133척의 적군과 대결‚ 31척을 부수었다. 다음 해 고금도로 진을 옮겨 철수하는 적선 500여 척 *현충사 현충사는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사당(祠堂)이다. 이순신은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나‚ 8세 이전에 충남 아산 백암리(白岩里) 기슭에서 성장하였다. 이곳은 이순신이 무과에 급제하기 전까지 살았고 현재 그 종가가 남아 있다. 종가의 앞뜰에는 우물 충무정(忠武井)‚ 활터 등 생전의 자취들이 여기저기 잘 보존되어 있다. 이순신이 순국한 지 108년이 지난 1706년 그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사당을 지었고‚ 1707년에는 "현충사"라는 사액을 받았다. 그 후 이 곳은 200여 년 간 추모의 행렬이 계속되었으나 일제시대에는 훼손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민족 지사들이 `이 충무공 유적 보존회`를 조직하였고 이순신 선양을 통해서 민족 정기를 바로 잡고자 동아일보사(東亞日報社)와 함께 주관한 국민 성금으로 사당이 중건되고 해방 후 매년 4월 28일에는 탄신제전이 올려지게 되었다. 1968년부터 현충사의 성역을 확대하였고‚ 1974년까지의 종합적인 조경 공사를 통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사적 제155호이다. 또한 인근 아산군 음봉면 어라산에 있는 이순신의 묘소는 사적 제112호이다. *대한민국 면적은 9만 9538㎢(남한)‚ 인구는 4792만 5000명(2003)이다. 인구밀도는 481.5명/㎢(2003)이며 통칭 한국이라고도 한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반도와 3‚2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중국의 만주와 러시아의 연해주에 접하고‚ 동쪽과 남쪽은 동해와 남해를 건너 일본에 면하며‚ 서쪽은 서해를 사이에 두고 중국 본토에 면한다. 조선 전기인 1413년(태종 13) 전국이 행정구역상 처음으로 경기(京畿)‚ 충청(忠?)‚ 경상(慶尙)‚ 전라(全羅)‚ 강원(江原)‚ 황해(黃涇)‚ 함경(咸鏡)‚ 평안(平安)의 8도(道)로 나뉜 이래‚ 1896년(고종 33)에는 함경‚ 평안‚ 충청‚ 전라‚ 경상도가 각각 남 ·북으로 나뉘어 8도가 13도로 개편되었다. 8·15광복 이후 서울이 경기에서 분리되어 특별시가 되었고‚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이 경남‚ 경북‚ 경기‚ 전남‚ 충남‚ 경남에서 분리 ·승격‚ 직할시를 거쳐 광역시가 되었으며‚ 제주가 전남에서 분리‚ 도로 승격하였다. 2003년 현재 남한은 1특별시 6광역시 9도로 이루어져 있다. <참고문헌> 세계화폐박물관 홈페이지 / 두산세계백과사전이 노량에 집결하자 명나라 제독 진인(陳璘)의 수군과 연합작전을 펴‚ 적군을 기습하여 혼전(渗戰)중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왜란 중 투철한 조국애와 뛰어난 전략으로 민족을 왜적으로부터 방어하고 또한 격퇴함으로써 한국 민족 역사상 가장 추앙받는 인물의 한 사람이 되었으며‚ 글에도 능하여 《난중일기(亂中日記)》와 시조·한시 등 여러 편의 작품을 남겼다. *거북선 임진왜란 직전에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고안으로 건조된 세계 최초의 돌격용 철갑전선(鐵甲戰船)이다. 《난중일기(亂中日記)》에 따르면 거북선에 비치한 포(砲)를 처음 발사한 날은 임진년(壬辰年:1592) 3월 27일이며‚ 처음 해전에 참가한 것은 장계(狀啓)에서 "5월 29일 사천해전(泗川涇戰)"이라 하였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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