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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제대형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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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리모제대형접시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반찬이나 과일 등을 담는 얇고 납작한 그릇. <역사> 동서교역의 통로였던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도자기가 유럽에 전파되면서 18C초 유럽에서 본격적인 백색자기 문화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유럽에서 자기를 포셀린(Porcelain) 이라고 명칭하는 것은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와 소개했다 해서 붙여진 말이며‚ 도자기를 보통 차이나(China)라고 부르는 것도 중국에서 유래됐다는 뜻을 담고 있다. 1709년 독일 마이센에서 처음으로 중국식 경질자기가 제작된 것을 시초로 하여‚ 유럽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자기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왕들이 자기 제조사업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그 당시 백색자기는 금보다 귀한 것으로 간주되어 왕실과 특정 귀족사회에서만이 소유할 수 있는 값진 보물이었다. 초기의 유럽자기에는 동양적인 문화와 철학이 담겨져 있으며‚ 문양이나 발색기법 등에서 오리엔트 양식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근대에 이르면서 화려한 색상과 금색으로 서구 취향에 부응한 패턴으로 변화 발전되어갔으나 아직도 동양의 맥이 이어져 내려와 유럽자기에서 오리엔트 양식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프랑스는 이미 18세기 말경 높은 수준의 도자기 공장이 많이 생겼고‚ 이곳에서 광택 없는 도금을 많이 사용하였다. 당시의 것들은 에나멜과 도금이 잘 스미지 않아서 시간이 지나면 도금이 닳거나 벗겨졌다. 19C초‚ 파리는 도자기의 황금기 였는데‚ 이때 역시 신고전주의풍의 자기로‚ 파리의 물가를 피해 점토가 발견된 리모주로 공장들이 대거 이동하여 리모주가 프랑스 도자기의 중심지가 되었다. <일반적 특징> 이 유물은 대형 접시로 음식기의 기능보다는 컨스터블의 작품" 사제관 뜰에서 본 솔즈베리 성당"을 통한 장식기능의 접시라고 할 수 있다. 솔즈베리성당을 그린 컨스터블(;Constable‚ John‚ 1776.6.11-1837.3.31 제분업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왕립미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802년 아카데미 전에 입선하였으나 곧 고향으로 돌아와 풍경화에 전념하였다. 화풍은 자연에 대한 관찰이 섬세하고‚ 영국 특유의 소박한 풍물을 묘사하였으며 밝은 색채감을 나타냈다. 특히 초록색의 발견자로서 근대 풍경화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이 감각은 들라크루아를 비롯한 프랑스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대표작으로 《건초수레》‚ 《솔즈베리대성당》등이 있다.)은 1811년부터 1829년까지의 기간 동안에 가끔 이 아름답고 장엄한 솔즈베리 대성당을 방문하여 계절과 기후 등에 따라 그 분위기를 달리하는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리모제 대형접시의 중심부에 원형으로 컨스터블의 "사제관뜰에서 본 솔즈베리 성당"을 넣었고‚ 솔즈베리 대성당 작품의 테두리는 금테로 하였고 음각으로 꽃 넝쿨을 넣어 금테의 장식을 돋보이게 하였다. 본 바탕의 색은 코발트색이며‚ 기형의 측면에도 금장을 하였으며‚ 굽 바닥 면에는 x표의 양각선이 있다. <참고문헌> 유혹하는 유럽도자기(2000‚ 한길아트)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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