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베르나르도 디너세트

추천0 조회수 72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베르나르도 디너세트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정찬용 식기 한 벌. <역사> 유럽 도자기의 역사는 이집트나 그리스의 도자기를 기원으로 하여 시대별‚ 지역별로 발전해 나갔다. 유럽의 고대 및 중세 도자기를 우리 동양의 도자기와 비교해 보면 그 형태도 물론 차이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장식에 쓰이는 유약이다. 일찍이 동양에서는 고화도 유약을 사용할 줄 알았기 때문에 식기나 일상생활의 다양한 도구들을 생산하고 사용할 수 있었던 반면‚ 이집트와 서아시아에서는 낮은 온도에 녹는 저화도 유약을 택해서 주로 장식품이나 건축용 자재들을 생산하는데 그쳤다. 그래서 고대부터 17세기까지의 유럽 도자기를 살펴보면 표면이 장식된 항아리나 주전자‚ 저장 용기 아니면 장식용 접시‚ 타일‚ 장식 용품들 이다. 요즘 여러 주부들이 탐내는 유럽의 도자기는 사실상 18세기가 되어서야 유럽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물론 이미 그 때에는 유럽에도 도자기가 알려져 있었다. 이미 당나라 때 발견된 도기가 마르코 폴로를 통해 13세기에 유럽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에 수입된 중국 도기는 희고‚ 단단하고 투명한 자태로 "상상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물건으로 평가되면서 심지어는 도기가 독을 해독할 수 있으며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신비한 힘을 지녔다고 믿어지기도 했다. 15세기에는 예수파 선교사들이 청화 자기를 샘플로 가져오기도 했으며‚ 17세기에 이르러 인도회사가 자기를 본격적으로 수입했고 이 자기의 수입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유럽의 도자기 회사들이 자기의 생산 공식을 연구하고 생산하려는 경쟁에 불이 붙었다. 18세기 초엽에 이 "oro bianco(gold of white color)"의 구성에 관한 연구를 둘러싸고 배신‚ 살인‚ 음모‚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 등이 이 있을 정도 이였다. 1708년 1월 15일 독일인 Johann Friedrich Bottger가 유럽 최초의 자기를 만들어 냈으며‚ 이는 독일 Meissen 회사에서 철저히 비밀로 지켜오다가‚ 1719년 Vienna의 Johann J. Ringler에게 그 공식이 노출되었다. 그리고 점차 도기의 공식이 유럽에 퍼지면서 많은 도자기 회사들이 설립되었다. <일반적특징> 주로 대량생산라인에서 산출되는 제품은 서양식의 제조방법이나 주문에 따라 서양식 제품이 생산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식 문화는 밥을 주식으로 먹고 국물이 있는 음식이 많아서 서양식기와는 다른 형태로 식기가 개발되어 디너 세트를 이룬다. 현재 소장중인 디너세트는 행남자기의 디너세트로 한국식으로 식기가 추가된 것이 대부분이다. 현재 박물관에 소장중인 디너세트는 디저트와 에피타이저에 국한한 식기들이다. 이 작품은 32점 1조의 디너세트로 엄밀히 말하면 전체 디너세트가 남아 있다고 할 수 없다. 티포트와 찻잔과 잔받침‚ 그리고 보울과‚ 대중소의 접시들이 32점을 이루고 있다. 주문양은 장미문양으로 장미봉오리를 기형의 중심에 포치하였다. 윤곽은 금테장식하였으며‚ 측면에 꽃다발들을 연결하여서 장식하였다. <참고문헌> 유혹하는 유럽도자기(2000‚ 한길아트)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