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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성화명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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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분청사기성화명타구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가래나 침을 뱉도록 마련한 그릇으로 타담호(唾痰壺). 타구(唾壺)라고도 함. <발달과정/역사> 분청사기는 고려 말 청자로부터 변모 발전한 것인데 분청사기란 용어 는 1930년대 고유섭이 당시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미시마(三島)" 란 용어에 반대하여 새롭게 지은"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 의 약칭이다. 제작시기는 고려 말부터 조선조 16세기 중엽까지 제작되었다. 고려 말 정치경제사회가 혼란하여지자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청자제작기술자들이 전국으로 흩어져 소규모 도기제작을 하였는데 이것이 분청사기제작의 시초였다. 1467-1468년경 경기도 광주에 사옹원이라는 관청의 분원이 설립된 후 백자생산이 증가하면서 16세기 중엽부터는 소멸하게 되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타구는 가래나 침을 뱉는 그릇으로‚ 타호(唾壺)‚ 타담호(唾痰壺)라고도 하며‚ 일반적으로 사기나 놋쇠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대개 윗부분은 직경이 넓고 경사지게 되어 있으며 허리는 잘록하여 잡기 쉽게 하였고‚ 가래나 침이 담기는 곳은 바닥을 평평하게 하여 안정감 있게 만들었다. 허리가 덜 잘록한 타구 중에는 음식을 먹을 때 뼈를 발리거나 돌을 씹었을 때 사용하던 `뼈 발리기`로 사용된 것도 있었다. 조선의 민가에서는 방안에 요강과 함께 받침에 얹어서 방안 한쪽 구석에 놓아두었다고 한다. 타구의 제작은 일반 그릇의 성형과는 달리 각기 다른 형태의 두 개의 그릇을 결합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19세기 백자에는 십장생이 민화풍(民畵風)의 문양으로서 두루 애용되었고 그 외에도 까치와 호랑이‚ 학‚ 봉황‚ 박쥐‚ 물고기와 파도‚ 산수‚ 매화‚ 모란‚ 연꽃‚ 도식화된 문자 등이 자주 시문된다. <참고문헌> 조선백자전Ⅱ (삼성미술문화재단‚ 1985) 한국의 도자기(정양모‚ 문예출판사‚ 199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백자Ⅰ‚ 분청사기(김재열‚ 예경‚ 2000) 조선후기 백자연구(방병선‚ 일지사‚ 2000)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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