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편액

추천0 조회수 69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편액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널빤지나 종이·비단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문 위에 거는 액자. 흔히 현판(懸板)으로 통칭된다. <역사> 문헌상으로는 이미 중국 진대(秦代)에 당시의 상용서체(秦書八體) 중 서서(署書)라 하여 건물의 명칭을 제서하는 서체가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그 이전부터 편액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의 현판은 삼국시대부터 등장한다. 현존하는 최고의 현판은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無量壽殿)과 경북 안동군 청사에 걸려 있는 안동웅부(安東雄府)의 현판은 모두 고려말 공민왕의 글씨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현판은 대부분 가로로 길쭉하여 횡액(橫額)이라고도 하고‚ 보통은 현판(懸板)이라고 부른다.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글씨의 경우 대개 대형이므로 대자(?字)라는 별칭도 있다. 편(扁)은 서(署)의 뜻으로 문호 위에 제목을 붙인다는 말이며‚ 액(額)은 이마 또는 형태를 뜻한다. 즉‚ 건물 정면의 문과 처마 사이에 붙여서 건물에 관련된 사항을 알려 주는 것이다. 중국 진(秦)나라 때 건물 명칭을 표시한 것을 서서(署書)라고 한 것이 편액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쓰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사찰 건물은 물론 도성과 문루‚ 궁궐 전각‚ 지방관아와 향교·서원·일반주택에까지 붙여졌다. 여기에 쓰이는 한자는 전서와 예서·해서·행서·초서 등 매우 다양하며‚ 요즘에는 한글로 된 편액도 많아졌다. 건물의 얼굴이므로 건물 격식에 어울리는 글씨와 장식을 더한다. 글씨의 경우는 당대 명필과 고승·문인의 것이 대부분이나‚ 더러는 옛 선현의 글씨를 모아 만들기도 하고 활자체나 특별히 만든 글씨로 장식하기도 한다. 글씨는 금니와 은니·먹·분청·호분 등으로 쓰고‚ 틀은 무늬와 색채를 넣어 주련(柱聯)과 함께 건물의 중요한 장식 수단이 된다. 이렇게 편액은 건물에 멋을 내는 수단임과 동시에 건물 명칭과 내력‚ 역사와 인물‚ 일화 등을 담고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편액(扁額)은 나무로 된 판에 흑칠을 한 후 양각(陽刻)으로 글자를 돋은 후 글자에 흰 칠을 하였다. “야은(野隱)”이라는 글자가 초서체(草書體)로 쓰여 있다. 현판의 테두리 부분은 국화문양과 연꽃 등을 연필로 그려놓고 마무리를 짓지 못한 상태이다. 뒷면에는 이 편액을 걸 수 있도록 철사로 줄을 만들어 놓은 것이 남아있다. 왼쪽의 ‘은(隱)’자 부분은 중간부분에 나무판 자체에 금이 크게 간 부분이 보인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유사용어> 편액(扁額)‚ 현판(懸板)‚ 횡액(橫額)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